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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흙탕 길로 갑니다.


파주신문 독자 여러분. 저는 이제 꽃길(?)을 떠납니다.
저는 그동안 신문을 통해서 하고 싶은 이야기를 전부는 아니지만 거의 다 해 왔고, 대접인지 경계인지는 모르겠지만 암튼 가벼이 보이지 않으면서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듣고 하였습니다. 파주지역의 기자이자 신문의 발행인이라는 직위가 대단해서라기보다 주로 접촉하는 대상이 보다 좋은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은 분들이나, 자신의 이야기가 알려지고 싶지 않은 사람들이다 보니 그런 착각을 하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한갓 기자가 뭐 그리 대수이겠습니까?
글머리에 제가 꽃길이라는 표현을 썼습니다만, 꽃길은 무슨요. 돌아보면 자갈밭 길이자 가시밭 길 이었지요. 제가 지금부터 가고자 하는 길에 비하면 꽃길이라는 의미이지 문자 그대로의 꽃길이 절대로 아니었음을 혜량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이미 많은분들이 알고 계시지만 이즈음에서 저의 과거를 고백합니다. 
저는 2014년 지방선거에 파주시장 후보로 출마를 한 사실이 있습니다. 그때도 저는 지역 언론인이었습니다. 그때 제가 속해있던 파주신문은 당시의 시장이던 모 씨와 격렬한 대립을 하고 있었습니다. 모 씨는 백선엽 동상을 세우는 문제부터 시작해서 ‘페라리 월드 유치 허위 의혹 문제’ 등으로 파주신문과 날카롭게 부딪쳤습니다. 파주신문에는 다른 신문사에 다 주는 광고는 물론, 보도자료 제공까지 거부했습니다. 공무원들은 동원하여 수 십억 원의 민사 소송과 형사 고발까지 하였습니다. 나중에 검찰 조사를 받을 때 보니까 파주시에서 제출한 서류가 캐비닛으로 하나 였습니다. 저와 파주신문은 졸지에 ‘파주발전을 가로막는 자’로 낙인찍혔습니다. 저는 인신구속은 물론이고 파산의 위험에 처해있었기에 시민들게 그런 사실을 직접 말하기로 하였습니다. 그때 저는 파주신문의 발행인을 그만두고 파주시장으로 출마를 했습니다.
선거기간 내내 목이 터져라고 외친 덕분인지는 몰라도 모 씨는 시장 선거에서 낙선을 하였습니다. 불가피한 것이기는 했지만, 그 모 씨도 저도 상처만 남은 싸움이었습니다. 
그런 과거가 있기에 지금 신문을 그만둔다는 것이 당당하지도 즐겁지도 않습니다.
무거운 마음뿐입니다. 
또다시 ‘수퍼 을’의 위치에서 온갖 비난과 험담을 감수하며 자신을 추스르고 태연하게 웃는 낮을 할 자신도 솔직히 없습니다.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으로서의 정치라는 평소의 제 믿음이 너무 지나친 것이 문제일지도 모릅니다.
힘이 있거나 없거나, 돈 이 있거나 없거나, 지식이 많거나 적거나 서로를 보살피고 품어주는 따뜻한 대동세상. 그런 세상을 위한 토대(土臺) 또는 범주(範鑄)를 만드는 일로서의 정치. 필요하지 않습니까? 저는 반드시 필요한 일이고 누군가는 그런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그런 일을 하기 위해서는 쓰레기 강을 헤엄쳐서 건너는 비루함을 견뎌야 할 것입니다. 
또 그 일이 신문이라는 사회적 공기(公器)를 통해서 구현되는 일말의 정의보다 가치 있는 일이라고 말할 자신도 없습니다.         
“그들이 저급하게 갈 때 우리는 품격있게 행동한다.(When they go low, we go high)”는 대원칙하에서 저의 생각을 이야기하려고 합니다. 
혐오와 분노가 아닌, 아량과 관용적인 태도로 합리적인 주장을 하려고 합니다.
정치권을 들락거리는 교수를 ‘폴리페서(polifessor)라고 하고, 같은 의미의 언론인을 폴리널리스트(polinalist: politics journalist)라고 합니다. 두 가지다 좋은 의미로는 쓰여지지 않는 단어들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를 비난하는 분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이해하고, 수용하고, 성찰하겠습니다. 
그동안 파주신문에 실린 저의 되지 않은 글들을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독자 여러분 행복하십시오.
  • 글쓴날 : [2022-01-27 22:5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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