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送年賦(송년부)

어느덧 한해가 또 갑니다.
코로나로 시작해 한 해 내내 코로나로 점철되었던 날들이지만 시간은 어김없이 흐르고 흘러서 한 해의 끝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신문이나 포털을 보면 한 해를 시작할 때나 끝날 때나 여전하게, 이 나라가 안 망하고 존재하고 있는 것이 신기할 만치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저주에 가득찬 기원(祈願)들이 넘쳐나고 있습니다. 그러거나 말거나 힘 있고 돈 있는 자들이 즐거움을 누리고 있는 한편에는 여전히 힘없고 돈 없는 자들의 서러움 역시 늘어만 가고 있습니다.
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는 개인의 능력만이 사회에서의 성공을 보장하는 유일한 척도인 것처럼 여기는 풍조가 만연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공정’ ‘원칙’ 등의 단어들이 그것을 상징하는 단어로 자리매김되고 있죠. ‘공정’ ‘원칙’이 그 의미에서는 합당하고 때로 아름답게까지 보입니다만, 그것이 막상 적용될 때 힘 있고 돈 있는 자들과, 그렇지 못한 자들 모두에게 ‘평등’하게 적용되어왔는가에 대해서는 의문을 금할 수가 없습니다. ‘모든 것이 세상 탓’이라는 푸념이 옳지 않은 것처럼, 모든 것을 개인의 책임으로 돌리는 것 또한 합당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의 생김이 다 다른 것처럼 사람은 저마다 태어난 자리가 다르고 환경이 다르기 마련입니다. 인간이 태어남을 선택할 수는 없는 일 아니겠습니까? 
그런가 하면 ‘가난은 나라도 구제 못 한다’는 말이 있듯이 개인의 이기적 동기에 의한 노력과 기회가 일정 정도의 ‘부’를 가져다주는 것 역시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이것이 자본주의 체제를 살고있는 우리들의 현실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충돌하는 두 가지의 가치 사이 어드메쯤에 오늘의 고단한 현실을 해결할 방안이 있을지 모릅니다. 
고백컨대 저는 전자의 입장, 즉 개인의 능력이 갖는 가치와 이기적 동기에 의한 자기발전 노력을 충분히 존중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다수가 행복한 조화로운 사회를 이루기가 어렵기 때문에 국가나 사회가 일정 정도의 개입을 통해서 기회를 보다 균등하게 제공하고, 약자를 보살피는 것을 지지하고 있습니다. 저는 태어나서 지금까지 한 번도 남보다 우월한 지위에 있어보지 못했고, 대다수의 사람들이 그러는 것처럼 경제적 곤궁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살았습니다. 지금 이 나이에 갑작스럽게 이런 환경이 변할 것을 기대하지도 않습니다.
다만, 그렇게 살아왔던 처지에서 단 한 번이라도 ‘공정’과 ‘원칙’이 제대로 구현되는 그런 세상을 보고 싶습니다. 돈과 권력 앞에서 구부러지지 않고, 그 잣대 앞에 너와 내가 다르지 않은 진정한 의미에서의 ‘공정’과 ‘원칙’을 보고 싶습니다.
저의 이런 이야기가 ‘철없는 어린아이’ 같은 소리라고 타박하실 분이 많이 있을 것을 잘 압니다. 세상이 어떤 세상인데 아직도 그런 소리를 하느냐구요. 
그런 질책 얼마든지 받겠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포기하지 않겠습니다. 그게 되고 안 되고와는 무관하게 제가 희망하는 세상을 바라볼 권리가 있고, 그 희망을 실천하기 위해서 저 나름의 노력을 할 자유가 있는 세상이니까요. 제게 ‘글을 쓰는’ 행위란 제 희망을 누군가에게 노래하는 것이고, 함께 가기를 바라는 외침입니다. 
이제 몇일이 지나면 새로운 한 해가 시작됩니다. 그러면 우리는 작든, 크든 새로운 희망을 품게 될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참으로 많은 성과를 일군 한 해가 되기도 하겠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에게는 회한이 남는 한 해가 되고 말 것입니다.
그래도 우리는 새로운 ‘희망’을 품을 것이고 또 그래야 합니다. 우리가 믿을 것은 가슴속에 품은 ‘희망’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독자 여러분들의 ‘희망’을 응원합니다. 
내년 이맘때에는 환한 웃음으로 만나기를 기원합니다. 한 해 동안 고마웠습니다.   
  • 글쓴날 : [2021-12-28 00:4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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