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대 l 축소

말보다는 실천하는 어른으로 남고싶다.

- 윤도영 파주미래DMZ 대표
말이 많은 세상이다. 그래서 말이 많은 사람을 자주 만나면 피곤하다. 특히 말만 빤지르르한 사람이 주변에 있으면 에너지를 빼앗기는 느낌이다. 실행하지 못한 공약이나 선언뿐만 아니라 소소한 약속이라도 지키지 못하면, 허공을 맴돌며 세상을 어지럽히는 말 쓰레기가 되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그로 인해 피해를 보고, 누군가는 마음이 상하고 때론 화가 나기도 한다. 그런 사람은 말을 잘 못 하는 사람이다. 말을 잘하는 사람은 언변이 뛰어난 사람이기보다는 자기가 한 말과 행동이 같은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윤도영 대표는 말을 잘하는 사람이다. 자기가 한 말을 실천하는 것은 물론, 생각한 것을 행동으로 옮기며 주변에 선한 영향력을 끼치고 있기 때문이다. 파평윤씨 선조들이 대대로 뿌리 내린 고향 땅 파주에서, 말보다는 실천하는 지역의 어른이 되고 싶다는 파주미래DMZ 윤도영 대표를 만났다. 
- 천연기념물 독수리 먹이 주기는 언제부터 시작하셨나요?
  처음 시작한 건 10년 전입니다. 독수리는 멸종위기 야생생물이면서 천연기념물입니다. 그런 독수리가 해마다 파주를 찾아오는데, 우리나라에 오는 독수리는 사냥을 하지 않고 썩은 고기를 먹어 ‘청소부’라는 별명을 갖고 있습니다. 자연생태계가 많이 파괴된 요즘 자연에서 독수리가 먹을 만큼 죽은 동물 사체를 찾기란 쉬운 일이 아니죠. 그것도 한두 마리가 아닌 수백 마리가 티베트나 몽골지역에서 겨울을 나기 위해 찾아오는데, 우리 땅에서 죽일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기존에 독수리 먹이를 주고 다친 독수리를 보살피는 분들이 계셨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고 그래서 저는 조금 더 안전한 곳에 먹이를 주고 싶었습니다. 파주는 접경지역이라 군사시설이 많아 땅을 잘 살펴야 합니다. 왜냐하면 소총, 기관총, 전차, 박격포 등 각종 화기 사격장으로 사용했던 곳에서는 납과 구리, 비소 등 중금속으로 오염되었기 때문입니다. 장산 전망대 아래 마정 벌에 있는 논은 사람들의 접근이 별로 없어 조용하고 안전해 독수리들이 쉬기에 적당한 곳입니다.

- 보람도 있겠지만 어려운 일도 있었겠지요?
  처음 시작했을 땐 혼자서 했는데, 몇 년 하다 보니 너무 힘이 들고 재정적으로도 많은 부담이 되었습니다. 그러다 뜻이 맞는 분들과 ‘임진강생태보존회’를 결성하게 되었고, 2016년부터는 회원들과 함께하게 되어 먹이를 더 많이 줄 수 있게 되었습니다.
  먹잇값이 1년에 1,500만 원에서 2,000만 원 정도가 들어갑니다. 보조금을 받는 것도 아니고 회비와 후원금으로 운영하니까 쉬운 일이 아니죠. 그렇지만 2018년부터 ‘독수리 생명 문화제’를 열어보니, 많은 분이 관심을 두고 찾아오시는 걸 보면 큰 보람을 느낍니다. 2019년 2회를 진행한 이후 조류인플루엔자와 돼지열병 그리고 코로나로 인해서 진행하지 못해 너무나 안타깝습니다. 
- 생태, 환경 쪽에 관심을 두고 활동하기 전에는 어떤 일을 하셨는지요.
  문산에서 20년 정도 학원을 운영했습니다. 교육사업을 하다 보니 날마다 앞만 보고 달리느라 다른 곳에 신경 쓸 여유가 없었습니다. 처음엔 주산, 부기, 타자 등 상업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학원이었다가 입시학원을 했는데, 90년대 초엔 학생이 오백 명이 넘어 건물 두 곳에 나눠서 운영할 정도로 잘 나갔습니다. 
  그러다 마흔다섯 살 때 가전제품 대리점을 하면서 수입 가전을 함께 취급했는데 당시 파주에 아파트 붐이 일어날 때라 사업이 날로 번창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욕심이 생겨 서울에 아파트 대단지 공사하는 곳에 가전제품을 납품했다가 30억 부도를 당했습니다. 학원 운영으로 번 돈 다 날리고 빛만 남았죠. 그냥 있으면 머리가 터져서 죽을 것 같아 마정리에 있던 땅에 카페 건물과 집을 짓고, 예전부터 좋아하던 통기타 치면서 마음을 달래고 있었습니다. 1999년부터 시작한 카페는 주변에 다 아는 형님, 동생이라 덕분에 정말 잘됐습니다. 그러다 ‘사회적기업 교육’을 받게 되었고, ‘이제 주변도 좀 돌아보고 폭넓게 살아야겠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러 가지 생각을 하다가, 생태든 환경이든 내가 할 수 있는 것부터 하나씩 하기로 했고 그게 독수리 먹이 주는 일이었습니다. 그 후 따복공동체 사업에 선정되어 카페를 공공장소로 활용하고자 리모델링을 하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함께 하는 분들이 계셔서 더 많은 것들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  ‘임진강생태보존회’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내가 살고 있는 지역의 생태를 보존하고 가꾸는 일은 다른 어떤 것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주변 분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우리가 모여 같이 하자.”는 뜻이 통해 2016년 단체를 만들게 되었습니다. 교장 선생님으로 퇴임하고 사과 농장을 하는 성연석 회장님이 1대 회장을 맡아주셨고, 마정 벌에서 논농사를 짓는 이이석 님이 부회장으로 솔선수범해 주신 덕분에 순조롭게 출발했습니다. 이이석 님은 2대 회장으로 계속 수고하고 계십니다. 시간을 내서 꾸준히 봉사활동에 참여하는 회원들이 덕분에 임진강 주변의 생태 보전을 중심으로 점점 활동 범위를 넓혀가고 있습니다. 
  독수리 먹이 주기, 독수리 생명 문화제, 임진강수계 정화작업, 생태조사, 청소년 대상 방과후 아카데미 생태 수업, 지역의 건강한 먹거리 알리기 등을 하고 있습니다. 또한 회원 누구나 활동 계획을 제안 및 진행을 할 수 있는데, 사무국은 운영위원회와 상의하여 참여자 모집 등 홍보와 필요한 지원을 하고 있습니다.

- 임진강 지류 정화작업은 어떻게 하게 되었나요?
  임진강을 깨끗이 보존하려면, 우선 임진강으로 흘러가는 지류부터 깨끗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한 달에 한 번씩 일정 구간을 정해 정화하는데 페트병이나 비닐은 물론 대형 폐타이어 같은 것을 치울 땐 엄청 힘이 듭니다. 처음엔 임진강생태보존회 회원들끼리 하다가 파주시자원봉사센터와 협의해서 봉사자를 모집하고 지원한 분들과 함께하고 있습니다. 생각한 것보다 훨씬 더 많은 학생이 와서 깜짝 놀랐습니다. 문산읍 행정복지센터에서 쓰레기봉투와 집게 그리고 장갑을 지원해 줍니다. 
  임진강 지류 정화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알게 하고, 봉사활동을 의미 있고 즐겁게 했으면 해서 그곳에 사는 어류 및 수서생물을 채집해 관찰하고 체험하는 시간도 넣었습니다. 그곳에는 참게, 다슬기, 송사리, 쌀미꾸리, 버들치, 꾹저구, 게아재비, 소금쟁이 등 다양한 생물들이 살고 있습니다. 정화작업을 통해 우리 토종어류 등이 더 건강하게 자랄 수 있다고 생각됩니다. 

- 허준 묘역 제초작업도 하셨지요? 
  파주에는 선현 관련 유적이 많이 있고, 그중에 『동의보감』의 저자인 허준 선생의 묘도 있습니다. 저는 의성이라 불리는 허준 선생에 관해 특별히 더 관심을 두고 보통 1주일에 한 번씩 다녀옵니다. 또 파주시에서는 허준 선생 묘역 성역화·한방클러스터 조성·허준 한방병원 유치 등을 추진하기 위해 학술연구용역을 진행 중인데, 자문위원으로 위촉되어 활동하고 있습니다. 역사성 규명과 함께 관련한 다양한 사업을 펼치기 위한 기반 조성입니다. 그런데 허준 선생의 묘가 파주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모르는 사람이 많습니다. 
  또 파주지역이 워낙 넓다 보니 파주시에서 유적 및 공원을 잘 관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차례가 오기 전에 풀들은 왕성하게 자랍니다. 더군다나 허준 선생 관련 다양한 일들을 하고자 하면서 정돈되지 않은 모습을 누가 보게 될까 봐 염려되었습니다. 그래서 누구라도 해야 할 것 같아 제안했는데, 최종환 시장님도 오시고 봉사를 신청한 분들과 함께 제초작업을 하게 되었습니다. 깔끔하게 정리된 묘역을 보니 묵은 때를 씻은 듯 개운하고 뿌듯했습니다. 항상 이런 모습이면 좋겠는데 쉽지가 않습니다. 
  제초작업을 하면서 힘든 점은 풀의 성장 속도와 번식력이 어마어마해서 자주 해야 하는데 그러기가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특히 돼지풀 종류는 미리 손을 쓰지 못하면 군락을 이루며 3m 이상 자라서 제거하기가 너무 어렵습니다. 
  얼마 전 덕진산성에 가보니 칡넝쿨이 탐방로를 뒤덮어 다닐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파주시에서 바로 말끔하게 제거해서 그 이후로 가신 분들은 제대로 탐방을 했을 겁니다. 누군가의 수고로 잘 정돈된 덕진산성이나 허준묘를 방문한 사람한테는 그곳 그리고 파주가 기분 좋은 기억으로 남겠지요. 그거면 됐습니다. 

- 더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부탁드립니다.
  저는 ‘환경운동가’가 아닙니다. 다만 내가 사는 지역 생태와 환경의 소중함을 알고 실천하는 한 시민일 뿐입니다. 환경운동가라고 하는 사람 중에는 자기들이 자연환경을 좌지우지한다고 착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자연의 소중함을 알고 그래서 지키기 위해 다양한 일을 하지만 같은 마음일 텐데, 자기들끼리 다투고 이권 싸움을 하는 것처럼 보일 때가 있습니다. 그건 아니라고 봅니다. 저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데 누구한테 손 벌려 돈 달라고 해본 적도 없고, 형편이 되는대로 가진 거만큼 하고 있습니다. 
  몇 년 공동체 활동을 해보니, 누군가의 희생이 따르지 않으면 그냥 되는 건 없습니다. 예를 들면 ‘임진강생태보존회’는 교육장으로 사용할만한 장소를 가진 저는 장소를 내놓고, 전·현직 회장님들과 자문위원님들은 후원회비를 내시고, 회원들도 마음에 닿는 대로 회비를 내고 있습니다. 좋은 일 한다며 멀리서 종이컵, 마스크, 소독약 등을 상자로 보내주시는 분들도 계시고, 바쁜 시간 쪼개서 봉사활동에 참여하는 분들도 계시죠.
  독수리 생명 문화제 2회 때는 너무 많은 분이 참여를 원해서 모두 다 독수리를 가까이서 관찰할 수는 없으니 일부만 참여할 수 있게 했습니다. 감사하게도 참여하신 분들이 독수리 먹이를 구매할 수 있는 참가비를 내주셔서 도움이 많이 되었습니다. 독수리가 불안하지 않도록 새를 관찰할 수 있는 베이스캠프도 만들어 따뜻한 차를 마실 수 있도록 했지요. 
  생태를 잘 보전하고 가꾸면 더불어 관광 자원화할 수 있는 일이 저절로 따라옵니다. 임진강과 DMZ라는 중요 자원을 중점적으로 연구하고 활용하는데 민관협의체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환경은 생존에 절대적 영향을 끼친다. 인문 환경은 물론이거니와 자연환경을 잘 지키고 보존해야 할 의무가 우리에겐 있는 건 내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나 또한 자연의 일부이고 어차피 자연으로 돌아갈 존재이다. 나쁜 흔적을 너무 많이 남기지 않았으면 한다. 선사시대부터 지금까지 그리고 앞으로도 존재할 모든 것, 우리의 후손과 자연을 위해 우리는 사용한 만큼 애써서 되돌리는 수고를 마다하지 말아야 한다. 
  파주미래DMZ 윤도영 대표와 함께하는 이들의 수고가 그런 의미에서 더욱 소중한 것이며, 앞으로도 끊이지 않고 발전하고 이어 나아가기를 바란다.
  • 글쓴날 : [2021-08-30 21:10:31]

    Copyrights ⓒ 파주신문 & www.pajunews.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전화면맨위로

확대 l 축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