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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원경제지 전어지(林園經濟志 佃漁志)》 출간

1. 풍석 서유구의 필생의 대작 《임원경제지》 16지 중 하나인 《전어지》 
조선 최대의 실용백과사전 《임원경제지》 중 목축·사냥·어로 백과사전인 《전어지》를 풍석문화재단(이사장 신정수)과 임원경제연구소(소장 정명현)에서 최초로 완역 출간했다. 2016년도부터 시작된 문화체육관광부의 “풍석학술진흥연구 사업” 지원에 힘입은 결과다. 풍석(楓石) 서유구(徐有榘, 1764~1845)가 평생을 바쳐 완성한 이 백과사전은 16개의 지(志), 252만 여 자에 이르는데, 그중 일곱 번째 지가 《전어지》다. 19년째 《임원경제지》 번역에 매달리고 있는 (사)임원경제연구소가 전체 완간을 향한 막바지 힘을 쏟아낸 결과이다. 철학자 도올 김용옥 선생이 서문을 썼다.

“여기 소개하고 있는 《전어지(佃漁志)》는 얼마 전 이준익 감독이 영화로도 만들었던 정약전(丁若銓, 1758~1816)·이청(李晴, 1792~1861)의 《자산어보(玆山魚譜)》(1822년 경), 그리고 김려(金鑢, 1766~1821)의 《우해이어보(牛海異魚譜)》(1803년) 와 함께 조선의 3대 어류 전문서로 평가받고 있다.
그런데 《전어지》는 어류 전문서일 뿐만 아니라 목축·양봉·사냥에 관한 정보가 풍성하게 실려 있다. 산과 들과 강과 바다에서 만날 수 있는 대부분의 동물들이 망라되어 있어서 ‘동물 백과사전’이라고 할 만하다. 물론 모든 동물의 망라가 아니라, 인간이 활용 가능한 동물에 국한하여 논리를 전개한 것이다. 그러니까 객관적 관찰을 통해 자연계의 동물 생태를 묘사하고 설명한 서양의 ‘동물학’ 서적과 같은 성격의 책이라기보다는, 인간이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섭취해야 하는 먹을거리나 일상 용품을 만드는 데 필요한 재료로서의 동물을 얻기 위한 지식을 담은 저술이었다. 오로지 삶의 유용성 차원에서 접근한 실용백과사전이다. 그래서 사람이 먹거나 활용할 수 없는 동물은 학문의 대상으로 삼지 않았다. 서유구에게 《파브르 곤충기》와 같은 연구는 큰 의미가 없었을 것이다. 인간의 유용성을 그러한 방법론 의 세계에까지 확대하지는 않았던 시기였기 때문이다. 《전어지》는 조선 시대의 삶의 코스모스에 존재하던 동물만을 망라해 체계적으로 종합한 최대의 저술이었다.”(도올 김용옥 서문)
“가축을 기르는 법이라든지, 사냥법이라든지, 바다에서 행해졌던 어부들의 어로 활동을 어쩌면 그토록 다양하면서도 세밀하게 묘사할 수 있었는지, 그저 경탄스러울 뿐이다. 이것은 결코 자신의 경험으로 얻을 수 있는 정보가 아니었다. 어부나 사냥꾼에게 물었을 것이고, 세밀한 관찰과정을 거쳤음에 틀림없다. 정약전이 흑산도에서 34세나 어린 청년 장창대(張昌大, 1792~?)와 흑산도 주민들에게 호기심을 가지고 물었듯이, 서유구도 각 분야의 전문가에게 꼬치꼬치 묻고 또 물었을 것이다. 신분이라는 장벽 때문에 체면 차리는 그런 삶의 태도는 서유구에게는 존재하지 않았다. 
풍석은, 말의 병을 고치고, 닭의 개체수를 늘리고, 양어와 양봉으로 재화를 획득하는 법을 전해주거나, 담비나 곰, 호랑이를 사냥하는 법과 전어나 조기, 명태 등 물고기 잡는 방법을 저술하는 것이, 다산의 《논어고금주 (論語古今註)》나 《맹자요의(孟子要義)》와 같은 류의 경학서, 그리고 《경세유표》나 《목민심서》와 같은 류의 경세학의 저술보다 훨씬 의미 있는 저술이라는 확신으로 가득차 있었다. 그런 소신이 없이 어찌 이런 방대한 동물백과를 지을 수 있었겠는가? 경학 활동의 결과물은 아무리 노력해봐야 선인들의 주석을 반복하는 것에 불과하고, 경세학 활동의 결과물은 토갱(土羹 : 흙으로 끓인 국)이요, 지병(紙餠: 종이로 빚은 떡)이라고, 일찍이 《행포지(杏蒲志)》 서문 (1825)에서 규정하지 않았던가.”(도올 김용옥 서문)
《전어지》는 4권 2책, 총 88,497자로 구성되어 있다. 
책 제목의 ‘전어(佃漁)’는 ‘사냥과 어로(漁撈, 고기잡이)’라는 뜻이며, 사냥과 어로뿐만 아니라 목축과 양어·양봉까지 포함되어 있다. 이번에 출간되는 번역본에는 그림 271장, 사진 189장, 표 11개, 일러스트 78점이 수록되어, 다양한 사냥과 고기잡이 방법들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고 있다.
“독자들은 《전어지》에서 조선의 동물세계 기록의 진수를 맛볼 수 있을 것이다. 《전어지》를 읽으면 시대의 격절과 문화의 엄청난 변동으로 인한 전통과의 단절의 벽을 실감할 수 있다. 그러나 임원경제연구소에서 이 단절의 벽을 조금이라도 더 허물기 위해 무척 애쓴 모습이 곳곳에서 역력히 보인다. 앞의 번역서들에서도 꾸준히 보여주는 방식이지만, 《전어지》에서의 여러 참고 사진과 그림이 그 진입의 벽을 낮춰준다. 더군다나 돼지나 닭 사육법과 사냥법 및 물고기 잡는 법을 삽화로 구현해 놓은 대목에서는, 의존적 문명을 살아가는 현대인의 수렵·어로 본능을 군침 돌게 자극해줄 정도로 원문을 매우 잘 시각화했다. 연구자들에게도 매우 포괄적인 도움을 준다. 조선 시대 동물연구는 앞으로 《전어지》를 거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도올 김용옥 서문)

2. 《전어지》의 개괄적인 내용
권1에서는 목축 총론과 말 기르는 법을 다룬다. “총론”에서는 가축 사육에서 중요한 점 몇 가지를 거론하며 중국 북방에서 대규모로 방목하는 방법을 배워야 함을 강조했다. “말”에서는 ‘이름과 품종’을 필두로 ‘보는 법’, ‘말 기르기 총론’, ‘종마 얻는 법’, ‘먹이는 법’, ‘수말이 싸우지 않게 기르는 법’ ‘군마를 튼실하게 기르는 법’, ‘코 째는 법’, ‘군살 빼는 법’, ‘말 거세법’, ‘치료하기’ 등 《전어지》에 등장하는 동물 중 가장 방대한 내용을 수록했다. 
권2에서는 말을 제외한 모든 가축과 물고기와 벌을 다룬다. 소·당나귀와 노새·양·돼지·개·고양이·닭·거위와 오리·물고기·꿀벌 등 총 12종이다. 이중 “소”에 관한 정보가 가장 많다. 또 양어법을 소개하는 “물고기”에서는 양어가 생계를 꾸리는 데 가장 좋은 방법이라는 내용으로 시작한다. 이런 이유로 물고기 기르는 법을 여러 가지로 모아두었다.
권3에서는, “매와 사냥개”를 사육하고 길들이는 법을 필두로 총과 활, 그물과 함정 등으로 들짐승이나 날짐승 사냥을 준비하는 방법을 소개한다. 고기잡이의 필수품인, 그물과 더불어 통발, 낚시와 작살 등 주요 어구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이들 중 촉고(촘촘한 그물)·후릿그물·반두·좽이·차망(갈래그물)·좌증(삼태그물)·어조망(漁條網: 큰 배 밑에 설치하는 안강망)·문망(기둥으로 고정시킨 어조망) 등을 설명한 기사는 그 묘사만으로도 복원이 가능할 정도로 구체적이고 세심하다. 그물 이외에, 통발·어살·낚시·작살을 이용한 어로, 약·보자기·이불·거적·모래·수수 등을 이용해 고기 잡는 법까지 그 묘사가 세밀하고 생생하다. 도롱이·대삿갓 같은 기타 낚시도구까지 포함하고 있다. 이상의 어구와 어로법 내용은 대부분 조선 최초이자 유일한 기록이어서 그 의미가 적지 않다. 이는 모두 《난호어목지》(서유구의 전어지 이전 저술)에서 인용된 내용이지만, 해당 부분의 《난호어목지》는 전해지지 않기 때문이다.
아래에 제공한 삽화는 모두 임원경제연구소 연구원의 밑그림을 일러스트로 완성한 것이다. 이 삽화들은 번역문을 시각화함으로써 독자들로 하여금 보다 텍스트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엄밀하게 고증과 토론과정을 거쳐 완성되었다. 연구자는 물론 일반인들에게도 호기심과 흥미를 자극할 만한 그림들이다. 영화나 드라마, 웹툰 등의 소재로 활용함으로써 보다 작품의 디테일을 살릴 수 있는 데도 적지 않은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한다.
권4는 〈물고기 이름 고찰〉이다. 물고기를 “민물고기”와 “바닷물고기”로 크게 나누고, 각 물고기를 다시 ‘비늘 있는 종류(인류)’, ‘비늘 없는 종류(무린류)’, ‘껍데기가 있는 종류(개류)’로 나누어 총 157종을 고찰한다. 각 어종을 해설하는 내용은 명칭 고증과 오류 수정, 명칭의 유래, 생김새, 크기, 습성, 서식처, 주요 산지 및 나는 때, 이동 경로, 맛, 잡는 법, 용도, 효능, 선호도, 가공법, 운송로, 판로 등 어류와 관련된 다양한 측면을 다루고 있다. 

3. 《전어지》의 특징 및 완역의 의의
《전어지》는 우선 국어학에서의 연구 소재를 제공하기도 한다. 어명이나 물명을 한글로 표기한 곳이 많기 때문이다. 《난호어목지》와의 연속선상에서 이 한글을 비교해보면, 《전어지》에 인용되는 과정에서 어휘 변화도 많이 볼 수 있다. 이는 동일인의 저술에서 불과 몇 년 차이들 두고 생긴 변화이다.
그 동안 3대 어보에 대한 깊이 있는 연구에 상당한 진척이 있었다. 그럼에도 《전어지》는 가장 주목이 덜 되었다. 연구 또한 다른 두 책보다는 적게 이루어졌다. 완역서가 나오지 않은 데에 그 이유가 클 것이다. 《전어지》 번역서는 2007년에 먼저 발행되었다. 그러나 이 책은 《전어지》의 권4 「어명고」만을 옮긴 것이다. 어로법까지 다룬 권3을 포함한 《전어지》 최초의 완역서는 2021년에서야 나왔다. 김용옥 선생의 서문대로 “조선 시대 동물연구는 앞으로 《전어지》를 거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전어지》는 《우해이어보》·《자산어보》와는 달리, 바닷물고기와 함께 민물고기를 수록했다는 점에서 진정한 의미의 어류 연구서이다. 권3에서 어구 만드는 법, 그 도구로 각종 물고기를 잡는 법, 기타 고기잡이법을 설명하고 본격적인 어족 연구 보고서를 작성했다는 점에서, 학문적 차원의 보다 균형 잡힌 체계적 어류학 저술이다. 이런 특성을 두고, 조선에서는 《전어지》(《난호어목지》)만이 어보에서 어서(漁書: 어업 전문서)로의 진전을 이루었다고 김문기 교수(부경대)가 평가하기도 했다. 《전어지》 번역자 중 정명현은 《자산어보》 전문가로, 《자산어보》의 원문을 정본화(定本化: 원문의 오류를 교정하고 원문에 표점을 찍어 저자의 본래 의도를 최대한 살리기 위한 원문 정리 활동)하고 이를 토대로 번역했던(2016) 경험을 살려 조선 후기의 어류 전문서들을 염두에 두며 번역에 참여하기도 했다. 조선의 역사에서 저평가되었거나 잘못 이해되었던 《전어지》의 가치가 앞으로 재평가되어야 할 것이다.

풍석문화재단·임원경제연구소
  • 글쓴날 : [2021-08-30 21:1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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