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대 l 축소

파주시 홍보대사 ‘문화관광해설사’로 20년

- 오순희 · 조복록 · 황영자
‘문화관광해설사’는 단순히 관광지를 안내만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소중한 문화유산을 올바로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한다. 2001년 ‘한국방문의 해’와 2002년 ‘월드컵’ 등 대규모 국가행사에 방문하는 외국인들에게, 우리나라 곳곳의 문화와 전통을 올바르게 이해시키며 안내하는 역할을 겸했다. 그래서 처음에는 ‘문화유산해설사’라고 하다가, 관광지나 농어촌 체험관광 등 다양한 분야로 업무가 확장되면서 ‘문화관광해설사’로 바꿔 부르게 되었다. 
‘문화관광해설사’ 제도는 임창렬 도지사가 공무출장으로 유럽에 갔다가 그곳에서 ‘해설사’를 인상 깊게 보고 우리나라에 도입하면서 시작 되었다. 2001년 전국에서 처음으로 경기도 문화관광해설사 교육이 시작되었을 때, 파주시에서도 참여하여 지금까지 20년 세월 문화관광해설사로 활동하고 있는 파주시 대표 홍보대사들이 있다. 파주의 변화 발전 과정에 지속적인 관심을 가지고, 오늘도 파주 홍보를 위해 윤관장군묘에 나와 있는 오순희·조복록·황영자 해설사를 만났다. 

- 20년 동안 한결같이 파주시 홍보대사 역할을 하는 게 쉽지 않았을 텐데, 소감이 남다르실 것 같습니다. 
(오순희 해설사) 
처음엔 해설사에 관해서도 파주 역사에 대해서도 잘 모르고 시작을 했습니다. 다른 사람 앞에서 이야기한다는 것이, 그동안 해왔던 일과는 달랐기 때문에 약간의 두려움도 있었습니다. 글을 쓰는 건 틀리면 고칠 수 있지만, 말은 그렇지 않기에 정말 조심스러웠습니다. 
이제는 임진각에서 해설할 때 해설지 설명만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가 처한 분단의 상황을 이야기 나누며 통일이 되면 육로로 유럽까지도 갈 수 있다는 사실을 설명합니다. 우리가 사는 파주는 접경지역이라는 특수 상황이라 남북통일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하게 되죠. 관람객들이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일”이라며, “그렇구나!”라고 할 때 보람을 느낍니다. 
처음엔 교육만 받았고 시스템이 구축되지 않은 때라 해설서나 안내서가 없어 어려움을 겪었는데 점차 자리를 잡아갔습니다. 유적지 안내장도 많지 않을 때라 허투루 사용하지 않고 아껴가며 꼭 필요한 사람에게만 나눠주곤 했습니다. 
(조복록 해설사)
벌써 20년이 지났습니다. 지금은 해설하는 것이 날마다 즐겁습니다. 항상 새로운 사람을 만나니까 늘 들뜬 기분이 됩니다. 그래서 그 긴 시간 동안 지치지 않고 이 일을 하는 것 같습니다. 당시 선발된 해설사 21명은 파주뿐 아니라 타 지역에서도 자원봉사를 하러 파주로 왔습니다. 그렇게 모두가 열정적으로 시작한 일입니다. 
해설사 명찰도 신분증도 없을 때라 ‘문화유산해설사 조복록’이라고 이름표를 스스로 만들어 달고 자유의 다리에서 해설을 했습니다. 1년 지나니 스피커를 지원해 주었는데 행사용 커다란 스피커라 자유의 다리 중간에 놓고 마이크를 사용해 해설했던 기억이 납니다. 열정이 많은 해설사들 중에는 휴대용 스피커와 마이크를 자비로 사들여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황영자 해설사)
마흔한 살에 시작해서 20년 동안 청춘을 다 바쳤습니다. 당시 고양시 덕양구 벽제에 살 때인데 어느 날 신문 한 구석에 ‘경기도해설사 양성과정 모집’ 공고를 보았습니다. 고양시에서 교육을 받다가 심한 감기에 걸려서 중도에 못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다시 파주로 지원하게 되었죠. 그때는 필기시험도 보고, 시민회관 대 공연장에서 시연도 해야 했습니다. 자원봉사인데 필기시험에 떨어진 사람도 있을 만큼 관심이 많았습니다.
  
- 20년 전, 첫 해설지에 얽힌 이야기가 궁금합니다. 
(오순희 해설사)
떨리는 마음으로 율곡 유적지에서 중학생들을 만났습니다. 서원과 묘소까지 함께 걸으면서 조근조근 설명을 하니, 학생들이 고개를 끄덕끄덕해줍니다. 걱정했던 것과는 달리 해설이 순조롭게 진행되어 참 좋은 기억으로 남았습니다. 
50대 중반에 시작해서 중년 시절을 다 바쳐 이 일을 했습니다. 아마도 그렇게 호응을 잘해주던 중학생들 덕분에 용기를 내 해설을 할 수 있었고, 지금까지 계속하게 된 것 같습니다. 
(조복록 해설사)
새 신부가 된 느낌이었습니다. 오래되었지만 설렘과 두려움이 묘하게 교차하면서 꼭 “시댁에 가서 잘 적응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하던 새 신부 때 느낌이 그랬을 것 같습니다. 
그땐 파주를 완벽하게 안다고는 할 수 없을 때라, 관광객이 질문하면 대답을 잘해줄 수 있을까? 걱정했지만, 첫 관람객을 해설하고는 정말 뿌듯했습니다. 대구에서 중학생들을 데리고 선생님이 임진각 자유의 다리를 설명하고 있었습니다. 다가가 “해설해드릴까요?” 물었더니, 좋다고 해서 첫 해설을 하게 되었습니다. 
 
- 그동안 해설을 하면서 유독 기억에 남는 관람객이 있다면 말씀해주세요. 
(조복록 해설사)
미국에서 온 선교사 다섯 분을 임진각에서 만났습니다. 해설하고 나니 사례비를 주시는 겁니다. 문화관광해설사는 사례비로 현금이나 물품을 받으면 안 됩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는 게 그분들은 문화라 제가 조금 난처했습니다. 그래서 한사코 주신다고 하니 그럼 봉투를 받되 그 자리에서 바로 선교헌금으로 드리고 싶다고 했더니 기뻐하셨습니다. 
또 한 번은 일본에 살고 있다는 재일교포가 삼릉을 찾아왔습니다. 그런데 아쉽게도 해설 마감이 5시인데 5분 전에 입장하신 거예요. 한국에 살고 있다는 조카와 동행이었는데, 조선왕릉을 모두 돌아보는 중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퇴근 준비하던 걸 멈추고 삼릉을 돌면서 1시간 정도 해설을 했습니다. 빨리 나오라는 스피커 소리를 듣고서야 해설을 마무리했는데, 그렇게 해 준 것에 감동하였답니다. 그게 인연이 되어 가끔 일본에서 초콜릿을 보내줍니다. 
한 번은 엄청난 분을 만난 적이 있습니다. 『한국인물사』의 저자 이은식 박사님이십니다. 윤관장군 묘에서 근무하고 있는데 70대 중반쯤 되어 보이는 분들이 해설해달라고 하는데, 정확히는 몰랐지만, 왠지 역사를 잘 아시는 분 같아서 “선생님 제가 오늘은 제자 할게요.”라고 했더니, 일행들에게 신나게 해설을 해주셨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은식 박사님이셨습니다. 그 일을 계기로 『조선청백리』를 집필 중인데 ‘심의선’ 한 명만 못 찾았다고 해서 함께 방축리 일대를 찾아보기도 하고, 유적답사 일정이 있으면 함께 다녀오기도 했습니다. 새로운 책을 내시면 꼭 보내주셔서 늘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황영자 해설사)
중국 연변 방송국 기자가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외국인 기자 단체로 반구정에 왔는데 북한말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언어를 사용했습니다.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통일에 관한 것 등이 우리와 생각이 많이 달랐습니다. 그래도 우리나라에 대해 좋은 인상이었으면 해서 열심히 해설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 해설사를 하면서 좋았던 것은 무엇인가요. 
(오순희 해설사)
끊임없이 역사 공부를 한다는 것입니다. 해설을 잘하고 싶어서 서울역사박물관, 중앙박물관, 동국대, 역사학자가 개인적으로 운영하는 강의 등을 찾아다니며 열심히 교육을 받았습니다. 우리나라 곳곳에 있는 유적지에도 찾아다니며 답사도 꾸준히 하고 있습니다. 파주 해설사회에서 외국으로 나가는 선진지 견학을 20년 동안 중국과 일본 두 번밖에 못 갔습니다. 매년 해외로 견학 가는 지자체도 있어 부러웠습니다. 2020년 3월에 러시아로 선진지 견학을 갈 예정이었는데, 그마저도 코로나 때문에 보류되고 말았습니다. 
(조복록 해설사)
관람객들은 역사를 잘 모르는 초등학생부터 역사를 전공하고 평생 그 분야에서 연구 업적을 남기신 분들도 많이 옵니다. 그래서 날마다 배웁니다. 어떻게 하면 쉽고 재미있게 전달을 할 수 있을까 고민하고 배웁니다. 또 전문가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의 해설이 점점 풍부해집니다. 그렇게 서로 나누는 것이 좋습니다.
(황영자 해설사)
번역은 실내에서 혼자 작업해야 하는데 밖으로 나와서 활동한다는 것 자체가 좋았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게 좋았습니다. 특히 가고 싶었던 유적지 등을 전문가들과 함께 자주 다니게 된 것이 좋습니다. 해설을 잘하려면 내가 늘 공부해야 합니다. 한마디 하려면 열 배 이상 알고 있어야 하니까 지금도 열심히 역사 공부를 하게 됩니다. 

- 앞으로 어떤 계획을 갖고 계시는지요. 
(오순희 해설사)
그동안 경기도 해설사회 소식지 편집장을 지내며 2011년부터 해설사 소식지 여섯 권이 발행되었는데, 그중에 내가 관여한 것이 네 권입니다. 올해 20주년 기념으로 책자를 만들 계획인데 예산이 없어 자비로 만들어야 합니다. 파주시나 경기도에서 ‘문화관광해설사’들의 중요성을 몰라준다는 그것이 매우 서운하기도 합니다. 그런 것들이 해설사들의 의욕을 저하하는 한 요인이 되기도 합니다. 
다른 지역엔 사찰 유적지에도 해설사가 있는데, 파주는 한 곳도 없습니다. 유서 깊은 보광사도 해설지로 추가해야 하고, 파주는 문화유적이 많은 지역이어서 앞으로 해설지가 더 많아져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금촌역이나 문산역에 파주시 전체를 홍보할 수 있는 ‘문화관광 정보센터’가 있으면 좋을 것 같습니다.  
(조복록 해설사)
해설사는 ‘요리사’라고 생각합니다. 똑같은 음식 재료, 조미료가 있어도 어떤 요리사가 요리하냐에 따라 맛이 다릅니다. 감칠맛 나는 해설사가 되고 싶습니다. 혜음원지에도 해설사가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곳은 고려 시대 유적이 드문 남한에서 접근 가능성이 아주 좋은 곳이고 의주길을 연결해 해설하면 파주를 찾는 사람들에게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황영자 해설사)
지금은 책임감이 커졌습니다. 해설사 제도가 처음 생겼던 20년 전에는 잘 모르니까 가볍게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10년쯤 했을 땐 자신감이 넘쳤는데, 알면 알수록 부족한 걸 알게 되기 때문에 더 겸손해져야겠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와 생각해보면 그때 해설사 하길 참 잘했습니다. 일본어 번역이나 통역 등 원래 하던 일을 해설사 하듯 열심히 했다면 물론 돈은 많이 벌었겠지만, 이 일을 하면서 저 자신이 많이 성장한 느낌입니다. 
양원수 파주시해설사회 현 지회장은 “한 달에 20회 정도 해설하는 다른 지역에 비해, 파주시는 1인당 8~9회밖에 되지 않아 아쉽다.”라고 한다. 또 외국어해설사는 해설사 교육을 통해 직접 해설할 수 있는 역량을 키웠으면 하는 바람도 있다. 지금은 통역기를 나눠주고 주변을 안내하는 역할을 하는데 그것마저 코로나 때문에 활동을 못 하고 있어 아쉽다고 했다. 
오순희 해설사는 10주년 기념으로 경기도에서 상을 받은 사람들은 일본으로 답사 여행을 보내주어서 다녀왔는데, 해마다 상 받은 사람 제주도 보내주는 것도 이제는 없어져 무척 아쉽다고 한다. 또 “수고했다.”라는 말 한마디가 사기진작에 큰 역할을 하는데, 열정을 다 바친 20년을 우리끼리 격려해야 하는 상황이 슬프기까지 하다고 했다.
20년을 한결같이 어떤 일을 한다는 건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더군다나 그 일을 소중히 여기며 하루하루 배움을 더하는 게 습관처럼 되어버린 해설사들이다. 사랑해서 결혼한 부부도 20년 한결같은 마음으로 살기가 쉽지 않은 일이다. 결혼 20주년을 자기혼식(磁器婚式)이라고 하는데, 힘든 일을 수없이 겪으며 자기처럼 단단해질 때 즈음이라 그렇게 부르는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자기(磁器)는 높은 온도에서도 잘 견딜 수 있는 흙을 찾아 불순물을 제거하고 철분 함량과 유약 두께를 잘 맞춰 섭씨 1,200도 이상 높은 온도에서 구워 만들기 때문이다. 가마 안 온도와 공기량을 꼼꼼히 조절할 수 있는 기술이 필요해 고려청자나 조선백자처럼 특별한 기술이 있어야만 만들 수 있는 것이다.
파주를 대표하는 홍보대사 문화관광해설사도 그런 특별함이 있다. 아무나 만들 수 없는 자기(磁器)처럼 품격을 갖추고 파주를 알리는 데 앞장서 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20주년을 기념하는 성대한 파티는 비록 없지만, 그래도 오늘처럼 내일도 파주를 찾는 관광객을 기쁘게 맞을 것이다. 
파주를 자세히 알고 싶은 사람은 곳곳에서 활동하고 있는 파주 홍보대사 ‘문화관광해설사’를 꼭 만나보고 가길 추천한다. 

인터뷰 작가 / 김선희 汀彬
kimsunny0202@hanmal.net
  • 글쓴날 : [2021-06-30 19:13:37]

    Copyrights ⓒ 파주신문 & www.pajunews.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전화면맨위로

확대 l 축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