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칡과 등나무

나는 갈등으로 시를 쓰고 사랑한다 2

-칡과 등나무

 

시인 장종국

 

힘겹게 여우고개를 넘는 여름날 등나무덩굴아래서 땀을 식히며 송수권시인의 <등꽃아래서>의 시 한편 풍미해본다. 서로 얽히고설킴이 아니라 홀로 얽히고설켜도 저렇게 풍성하고 고운 빛을 발하면서 향기를 풍기는 지혜를 깨달아 봄직하다. 도라산자락에 뭉게구름 한 덩어리가 몸을 풀면서 동으로 자맥질하고 있다.

 

한껏 구름의 나들이가 보기 좋은 날

등나무아래 기대어 서서보면

가닥가닥 꼬여 넝쿨져 뻗는 것이

참 예사스러운 일이 아니다

철없이 주걱주걱 흐르던 눈물 이제는

잘게 부셔져서 구슬 같은 소리를 내고

슬픔에다 기쁨을 반반씩 버무린 색깔로

연등 날 지등의 불빛이 흔들리듯

내 가슴에 기쁨 같은 슬픔 같은 것이 물결이

반반씩 한꺼번에 녹아 흐르기 시작한 것은

평발 밑으로 쳐져 내린 등꽃송이를 보고 난

그 후부터다

밑뿌리야 절제 없이 뻗어있었지만

아랫도리의 두어 가닥 튼튼한 줄기가 꼬여

큰 둥치를 이루는 것을 보면

그렇다 너와 내가 자꾸 꼬여가는 그 속에서

좋은 꽃들은 피어나지 않겠느냐?

또 구름이 내 머리 위 평발을 밟고 가나보다

그러면 어느 문갑 속에서 파란 옥빛 구슬

꺼내드는 은은한 소리가 들린다

 

등꽃의 풍성한 화려함을 보면서 먹을 것을 걱정하는 김명인시인의 <저 등나무 꽃 그늘아래> 시 한편이 눈앞에서 하롱하롱 댄다.

 

오늘은 급식이 끝났다고, 밥이 모자라

대신 컵라면을 나눠주겠다고

어느새 수북하게 쌓이는

벌건 수프국물 번진 스티로폼그릇 수만큼

너저분한 궁기는 이 골목에만 있는 것은 아니리라

부르면 금방 엎어질 자세로 그을음을 껴안고

목을 길게 빼고 늘어진 앞 건물도 허기져있네

나는, 우리네 삶의 자취가 저렇게 굶주림의 기록임을

새삼스럽게 배운다. 빈자여

등나무꽃 아래 줄지어 차례를 기다리며

우리가 무엇을 이 지상에서

배불리 먹었다하고 잠깐 등나무 둥치에 기대서서

먹을 내일을 걱정하고, 먹는 것이 슬퍼지게 하는가

등꽃 서러움은 풍성한 꽃송이 그 화려함만큼이나

덧없이 지고 있는 꽃그늘뿐이어서

다시 꽃 필 내년을 기약하지만

우리가 등나무 아랫길 사람으로 어느 후생이

윤회를 이끌지라도 무료 급식소 앞 이승

저렇게 줄지어 늘어선 행렬에 기고 보면

다음 생의 세상

있고 싶지 않아라. 다음 생은

차라리 등꽃 보라나 되어 화라락 지고 싶어라

 

등나무보랏빛이야기 하나.


신라시대 어느 마을에 19살과 17살 된 두 처녀가 오붓하게 살고 있었는데, 바로 그 옆집에 얼굴이 준수하고 씩씩한 청년이 살고 있었다. 이들 두 자매는 얼굴이 복스러웠을 뿐만 아니라 마음씨도 착해서 마을 사람들의 칭찬과 부러움을 한 몸에 받고 있었다. 나이가 들어 혼기가 되어 혼삿말이 오갔다. 그러나 자매는 내놓으라는 신랑감들을 거들떠보지도 않았는데 거기에는 그럴만한 사연이 있었다. 두 자매는 마음속으로 각자 옆집 청년을 흠모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자매끼리도 서로 비밀로 했기 때문에 이 사실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옆집 청년이 싸움터로 떠나게 되었다. 청년이 떠나는 날 언니는 장독대에 숨어서 눈물을 흘렸고, 동생도 담장 밑에서 흐느껴 울다가 언니와 마주치게 되었다. 그때서야 비로소 자매는 한 남자를 둘이서 사랑하고 있음을 알았다. 남달리 우애가 두터운 자매였기 때문에 이들은 서로 양보하기로 결심하였다. 그러다 뜻하지 않게 청년이 싸움터에서 전사했다는 통보가 왔다. 청년의 전사 소식을 들은 자매는 용림(龍林)의 연못가로 달려가 얼싸안고 울었다. 그리고 둘이서 꼭 껴안은 채 물속에 몸을 던지고 말았다.

그 후 연못가에는 두 그루의 등나무가 자라기 시작하였다. 그로부터 세월이 흘러 죽은 줄로만 알았던 옆집청년이 훌륭한 화랑이 되어 돌아왔다. 청년은 자기 때문에 세상을 등진 자매의 애달픈 이야기를 들었다.

나로 인해 세상을 떠났다니, ! 내가 몹쓸 짓을 했구나. 앞으로 그 정도로 나를 사랑해 줄 사람이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라며 청년은 마침내 결심을 굳히고 연못 속에 몸을 던져 죽고 말았다. 그 후 연못가에는 한 그루의 팽나무가 자라났는데 사람들은 이것이 청년의 화신이라 믿었다. 봄이면 두 그루의 등나무가 탐스러운 꽃을 터트려 그윽한 향기를 풍기며 팽나무를 힘껏 껴안듯이 감았다.

이 전설은 사랑이 식은 사람들이 이곳에 오면 다시 가까워진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경북 월성군 견곡면 오류리에 용림이라는 숲이 있고 용등(龍燈)이라는 등나무가 있다.


 

  • 글쓴날 : [2021-05-05 23:1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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