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꺼벙이

꺼벙이와 임꺽정 1

-꺼벙이

 

시인 장종국

 

여우고개에서 오른쪽으로 틀어 37번 도로를 엉금엉금 시샘달과 동행하는 어스름밤길이 적적하다. 발목까지 빠지는 눈길, 찻길과 철가시울타리 사이의 샛길은 일방통행이라 마을버스가 운행을 포기한 날은 으레 걷기 일쑤다. 철가시울타리엔 사진촬영금지란 붉은 푯말에 시선이 멈추는 포() 부대 앞을 지난다. 포는 거북이 등짝 닮은 콘크리트방호시설에 숨겨져 있고, 시국이 시국인지라 포신은 거북이주둥이처럼 길게 북쪽하늘을 향해 내밀고 있다.

철가시울타리 외돌아진 구석은 작은 습지로 갯버들과 갈대숲이 무성하다. 갑자기 갈대숲이 흔들린다. 보이지 않는 물체의 다급한 이동이 산적의 움직임처럼 숲을 흔든다.

놀라, 가던 길 멈추고 수상한 숲을 응시하는 순간 장끼란 놈이 임진강주남동건너동산을 향해 후드득 날아오른다. 이내 가볍게 흔들리던 갈대는 제자리를 찾고 정적은 인감도장처럼 자리 굳힌다.

꿩은 아름다운 전설을 간직한 새로 꿩과에 속하는 새로 우리나라 전역에 분포되어 서식하는 흔한 이동성텃새이다. 꿩은 암컷과 수컷의 색깔은 매우 다르다. 수컷의 깃털은 아름답고 화려하지만 암컷은 몸 전체가 단조로운 황갈색이며 깃털마다 흑갈색의 반점이 있다. 우리나라 수꿩은 목에 하얀 띠가 둘러 있어서 영어로 Ring necked pheasant라 부른다. 암꿩은 까투리라 부르고 수꿩은 장끼라 부른다.

명나라 시절 이시진(李時珍)은 한의학의 기본 경전인 본초강목(本草綱目)에서 꿩에 관한 설명이 이렇게 쓰여 있다.

꿩은 나는 것이 마치 화살 같다고 해서 화살 시()자를 쓴다. 꿩이 나는 것을 보면 마치 화살이 날아가는 것처럼 머리를 들이박듯 난다. 꿩의 새끼를 꺼벙이라 부른다. 조금 모자라는 뜻한 사람을 가리켜 꺼벙한 사람이라 부르기도 한다.

 

김광규 시인의 <서울 꿩>, 서울도심의 개발제한 구역에서 살아가는 꿩들의 모습을 통해 개발로 인해 훼손되는 자연과 문명이 찌든 채 살아가는 도시민들의 삶을 담담하게 그려내고 있다.

서울특별시 서내문구/ 한 모퉁이에/ 섬처럼 외롭게 남겨진/ 개발제한구역

홍제동 뒷산에는/ 꿩들이 산다.

 

가을날 아침이면/ 장끼가 우짖고/ 까투리는 저마다/ 꿩병아리를 데리고

언덕길/ 쓰레기터에 내려와/ 콩나물 대가리나 멸치꽁다리를/ 주워 먹는다.

 

지하철 공사로 혼잡한/ 아스팔트길을 건너

바로 맞은 족/ 인왕산이나/ 안산으로/ 날아갈 수 없어

이 삭막한 돌산에/ 갇혀버린 꿩들은/ 서울시민들처럼/ 갑갑하게/ 시내에서 산다

 

예전에는 선비가 윗사람을 찾아갈 때 폐백(幣帛), 즉 예물로 꿩을 가지고 갔다.

한나라 시절 유향은 설원(設苑)에 이렇게 적고 있다. ()은 염소로 폐백을 삼는다. 염소란 양이다. 양은 무리지어 살지만 떼거리 짓지는 않는다. 그래서 경이 이것을 폐백으로 하는 것이다.

대부는(大夫)는 기러기를 폐백으로 삼는다. 기러기란 줄지어갈 때 장유(長幼)의 차례가 있다. 그래서 대부는 이것을 폐백으로 한다.

()는 꿩을 폐백으로 삼는다. 꿩은 맛이 좋지만 새장에 가두어 길들일 수 없다. 그래서 선비가 꿩을 폐백으로 한다. 선비는 임금에게 꼭 필요한 존재이지만 손아귀에 넣고 함부로 할 수 없다. 바른 말로 임금을 보필하되, 굳은 지조를 지켜 길들이지 않겠다는 정신을 꿩에 담아 폐백으로 바친다는 것이다. 이렇게 윗사람에게 바치는 폐백에도 깊은 뜻이 담겨있다.

 

장끼는 한 산에 한 마리만 산다. 일부다처이긴 하지만 자신이 거느리는 영역 밖에 사는 남의 각시까투리를 넘보거나 추파를 던지는 일이 없다. 이렇게 남녀가 유별하다 하여 덕조(德鳥)라 부른다. 만약 바람기 있는 까투리가 옆 산의 장끼에게 추파를 던지는 일이 있으면 장끼끼리 사생결단으로 싸우다 힘이 빠져 패색이 짙어진 도중에도 도망치는 법이 없이 끝까지 싸운다.

옛날 무신들이 머리에 꿩 깃을 꽂고 다닌 이유는 바로 사생결단하는 장끼의 용기를 숭상함에서 유래된 것이다. 고구려에서는 전쟁에서 개선한 장군의 머리에 꿩 깃을 꽂아주었다. 그리고

신라 화랑도의 모자에 꽂아 기품을 나타내는 장식의 역할로 쓰였다.

또한 특성으로 강인한 모성본능을 들 수 있다. 산불이 발생할 경우 제 새끼가 빠져나오지 못할 경우 그를 구하러 날아들어 타 죽거나, 알을 품고 있는 중에 산불이 나면 불에 타 죽을지언정 날아가지 않는 습성을 지녔다.

 

꿩의 보은 이야기

 

경상도 의성에 살던 선비가 과거시험을 보려고 한양에 가던 길이었다. 적악산(赤嶽山)을 지나는데 어디선가 다급한 비명소리가 들리는 것이었다. 둘러보니 커다란 구렁이가 혀를 날름거리며 입을 크게 벌려 꿩을 잡아먹으려는 순간이었다.

선비는 얼른 활을 쏘아 구렁이를 죽이고 꿩을 구해주었다. 선비는 숲 속에서 길을 잃고 헤매던 중, 멀리서 불빛이 비치는 집을 찾아 문을 두드리자 묘령의 여인이 맞아주었다. 피곤에 지친 선비는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잠결에 온몸이 조여드는 답답함을 느꼈다. 숲 속 외딴집의 여인은 낮에 선비가 쏘아죽인 구렁이의 아내였다. 구렁이는 죽은 남편의 복수로 선비를 죽이려는 것이었다.

선비는 정신을 차려 구렁이에게 이르기를, 선비는 살생을 보고 그냥 지나칠 수 없었노라 말하고 살려달라고 빌었다. 선비의 말을 들은 구렁이는 첫닭이 울기 전, 절에 있는 종루에서 종이 세 번 울리면 살려주겠다고 했다. 하는 수없이 죽기만을 기다리고 있는데, 멀리서 종소리가 희미하게 울리는 것이었다. 종소리를 들은 구렁이는 낙담하여 몸을 감은 것을 풀고 사라졌다. 선비가 날이 밝자 종소리가 난 곳으로 달려가 보았다. 종 아래엔 꿩 세 마리가 피투성이가 된 채 떨어져 죽어 있었다. 꿩들은 은혜를 갚으려 제 몸을 던져 종을 울렸던 것이다. 선비는 크게 깨달은바 있어 이곳에 절을 세우고 중이 되었다. 그리고 은혜 갚은 꿩의 아름다운 뜻을 기려 산 이름을 치악산(雉岳山)으로 고쳤다.

강원도 원주의 치악산은 원래 이름이 적악산이었다. 이 이야기는 치악산 상원사(上院寺)의 창건 실화이다. 상원사에 가면 보은의 종을 볼 수 있다. -asistch@hanmail.net

 




  • 글쓴날 : [2021-05-05 23: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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