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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발에 처음 길을 내듯이



구부러진 못 2

-눈발에 처음 길을 내듯이

 

시인 장종국

조선시대의 아버지는 어땠을까?

조선시대 후기 문신인 이양연(1771~1853)의 시, <들판에 내린 눈>(野雪)은 김구 선생의 애송시이기도하다. 독립운동의 길을 오롯이 걸어야겠다는 다짐으로 읽혔으리라 생각되지만, 오늘을 걸어가는 모든 사람들이 한 번씩 읽어 보면서 새김을 가졌으면 좋겠다. 과연 오늘의 지도자라고 떠들어대는 자들이 남기는 길은 어떤 길일까?


눈을 밟고 들판을 걸어갈 적에

모름지기 어지러이 걷지를 마라.

오늘 아침 내가 남긴 발자국들이

마침내 뒷사람의 길이 되리니.

 

아무런 좌표도 없이 들판에 혼자 서 있다. 때로는 눈밭에 하염없이 주저앉고 싶지만, 처음 남겨진 자신의 발자국이 누군가에게는 본보기가 될 것이니, 아무렇게나 걸을 수 없는 노릇이다. 독립투사도 그렇지만 가장 버거운 무게를 짊어진 외로운 아버지의 모습이 오버랩 되는 것은 나만의 느낌이 아닐는지.

 

이양연은 65세가 되던 해 아내와 아들을 잃는다. 그가 겪은 아픔의 상처는 무어라 표현할까. 그러나 그의 시에서 자식이 그립다는 말 한마디 나오지 않는다.

그의 산문집 동산에서 감회가 있어서에 실린 글로 자식의 죽음을 다룬 곡자시(哭者詩)에 해당되지만 그 어디에도 자식이 그립다는 말 한마디 나오지 않는다.

 

지난해에 뒷밭으로 놀러갔다가

넌 풀숲에서 배를 주웠더랬지.

수건으로 닦아서 내게 준 것을

나는 손자에게 주었더니라.

 

시에 그려진 풍경은 수채화처럼 아름답다. 아들은 풀숲에 떨어진 배를 주워 아버지에게 건네고, 할아버지는 그것을 다시 손자 손에 쥐어주었다. 동산이야 작년과 다를 바 없다지만 가장 사랑했던 아들은 그 자리에 없다. 작년에 스러져버린 시간이지만 여전히 살아있고, 지금 이 공간에 현재는 다 주고 사라져버렸다. 공간은 그곳을 공유했던 아들과 함께 있을 때 가치를 지닌다. 추억만 할 수 있고, 추억을 만들 수 없는 공간이란 그래서 가슴시리다. 자식이 없는 것 빼고는 그대로지만 모든 것은 낯설기만 하다.

 

죽은 딸을 위한 제문 또한 아버지의 고뇌가 돋보이는 문장이다.

 

죽은 딸인 송씨 아내에 대한 제문.

- 너는 나를 믿어주었지만

 

! 대체로 딸이 아버지를 우러르는 것은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 중에 아버지만한 사람이 없고, 현명하고 지혜로움도 자기 아버지만 같은 이가 없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오직 아버지 말만 믿고 따라 혹 아버지 된 자가 그 아이를 처리함에 바른 도를 얻지 못하여 딸에게 낭패를 당하게 하더라도 딸은 도리어 아버지를 원망하지 않고 아버지에게 하소연하기를 그치지 않는다,

네가 네 아버지를 믿는 것이 거의 이보다 더 심함이 있었지만, 네가 일생동안 곤란을 겪었던 것은 네 아버지 탓이었다. 그렇지만 일찍이 조금도 얼굴에 고까운 기색을 드러내지 않으면서 항상 아버지가 잘 지도해주기만을 바랐더랬다. 네가 병들자 오직 네 아비만이 너를 살릴 수 있다고 생각하고 나에게 기대하고 왔지만 치료하는 도중에 부적절한 조치로 인해 너를 죽게 했다. 네가 더욱이 차마 아버지를 잊지 못해서 임종 때에도 내 손을 어루만지며 사랑하여 손을 놓지 않았다. 네 아비 된 사람이 이 지경에 이르렀으니 도리어 마음이 어떠했겠니?

 

어떤 사람이 화와 복, 삶과 죽음은 운명 아닌 것이 없다고 했다. 그러나 하늘과 사람은 둘이면서 하나인 것이니. 사람의 일이 이와 같았기 때문에 천명이 마침내 이와 같은 것이다. 네 운명이 불행하게 된 것은 내가 사람의 일을 잘 처리하지 못했기 때문이니, 너에 대해서 어찌 부끄럽고 한스러움이 없겠는가? 곧 마음속에 하나의 덩어리가 되었으니 죽기 전에는 깨뜨릴 수 없을 것이다. !

 

딸을 위한 제문이다. 딸은 자신을 예뻐할 사람도 아버지가 제일이고, 현명함이나 지혜로움도 아버지가 최고라고 믿는다. 딸은 곤욕을 당하더라도 아버지 탓으로 돌리지 않고 끝내 하소연하며 아버지를 찾았다. 자식이 이 객관적이지 않은 믿음이야말로 아버지가 아버지가 될수 있는 힘일 것이다.”

 

심익운(1734~?)은 조선시대 후기 3대 천재 문인 중 한 명으로 꼽힌다.

자신만의 자장가를 만들어 아이에게 들려주었다. 어미를 찾아 보채는 아이나 아내를 잃은 자신이나 둘 다 불쌍하기는 마찬가지로 들린다.

 

강가 풀 파릇파릇 제비는 날아가고/ 강가 바람 쌩쌩 불어 옷깃에 가득하네.

지난 해 처음으로 서호 길 알았는데

누가 오늘 아침 눈물 훔치고 돌아가리라 말했으랴.

못난 아들 반드시 어진 딸보다 나은 것이니/ 못난 아비 평생토록 이 애에게 의지하리.

너처럼 총명한데 수까지 누렸다면/ 문호를 부지 못함 근심을 않았으리.

해마다 동생 죽어 곡을 자주 하였더니/ 중춘의 17일과 초순 무렵이구나.

가련타! 저들은 어찌 같은 달과 날에 세상 떠났나?

산 정상 한 쌍 무덤 죽어서 이웃 됐네.

집에는 약초밭과 꽃밭이 있었기에/ 살던 곳 어디든지 늘 따라다녔었지.

마음아파 차마 책을 펼칠 수 없던 것은/ 그 옛날 책 말릴 때 책 주던 너 기억나서지.

달 다섯이나 낳았지만 단 둘 만 남아있고./ 그 사이 가진 아들 금세 또 세상 떴네.

사내 낳기, 딸 키울 일 원하지 않노니/ 남은 생 다시 창자 끊길 일 없으리라.

-asistch@hanmail.net

 


 


  • 글쓴날 : [2021-05-05 23:0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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