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부러진 못 1
-시인의 아버지
시인 장종국
새삼스럽게 아버지라는 존재를 생각해본다. 어릴 적 아버지는 하늘처럼 위대한 존재였다가 마지막에는 구부러진 못처럼 나약한 존재로 비춰지는 모습이 아닐는지. 자식을 위해서라면 무슨 짓인들 가리지 않는 것이 일반적인 아버지의 본성일 것이다. 잘되고 못되는 것은 모두 아버지 탓이라면 나도 할 말 없는 듯하다. 돈 많은 것도 아니고, 직업 또한 번듯하지 않고, 권력을 가진 것도 아닌 너무나 평범하다 못해 부족하여 자식들에게 때로는 부끄러울 때도 있으니 말이다.
현실의 아버지 등은 딱딱한 나무에 깊숙이 박혀 이미 썩어 구부러진 못이거나, 견고한 시멘트벽에 박기 전 구부려진 상태라면 어떨지. 아버지는 자식을 위해서라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가슴에 박히는 못이 되어준다.
시인들의 아버지는 어떤 아버지일까. 시 속에서 그 대답을 찾아보자.
나희덕 시인의 아버지는 아슬아슬하고 위태한 못 하나에 의지하여 집을 꾸리고 새끼들을 키우고 꾸벅이며 잠드는 것이라며, 제비집에서 그 해답을 구해 <못 위의 잠>을 노래한다.
저 지붕아래 제비집 너무도 작아/ 갓 태어난 새기들 만으로 가득차고
어미는 둥지를 날개로 덮은 채 간신히 잠들었습니다//
바로 그 옆에 누가 박아 놓았을 까요/ 못 위에 앉아 꾸벅거리는 제비들
눈이 따갑도록 올려봅니다//
못 하나 위에서 견디는 것으로 살아온 아비,//
거기에선 아직 흙바람이 몰려오나 봐요/ 돌아오는 길 희미한 달빛은 그런대로
식구들의 손잡은 그림자를 만들어 주기도 했지만
그러기엔 골목이 너무 좁았고/ 늘 한 걸음 늦게 따라오던 아버지의 그림자//
그 꾸벅거림을 기억나게 하는 못하나,/ 그 위의 잠
아슬아슬하고 위태한 못 하나에 의지하여 집을 꾸려 새끼들을 키우고 꾸벅이며 잠드는 아버지 모습을 상상해본다.
정호승 시인도 벽에 박혀 빠져나오면서 구부러진 <못>으로 아버지를 그렸다.
벽에 박아두었던 못을 뺀다/ 벽을 빠져나오면서 못이 구부러진다
구부러진 못을 그대로 둔다/ 구부러진 못을 망치로 억지로 펴서
다시 쾅쾅 벽에 못질하던 때가 있었으나
구부러진 못의 병들고 녹슨 가슴을/ 애써 헝겊으로 닦아 놓는다
뇌경색으로 쓰러진 아버지/ 공중목욕탕으로 모시고 가서
때밀이용 침상 위에 눕혀 놓는다/ 구부러진 못이다 아버지도
때밀이 청년이 벌거벗은 아버지를 펴려고 해도/ 더 이상 펴지지 않는다
아버지도 한 때 벽에 박혀 녹이 슬도록/ 모든 무게를 견뎌 냈으나
벽을 빠져 나오면서 그만/ 구부러진 못이 되었다
아버지 몸통은 하늘이다. <별>처럼 총총하게 못을 박고선 빛나는 존재다.
박완호 시인의 아버지는 평생 하늘에 별을 박고 살아온 목수였나 보다.
목수였던 아버지는 죽어서
밤하늘 가득
반짝이는 순금의 못을
박아 놓았네//
텅,
빈,
내 마음에
화살처럼 와 꽂히는
저 무수한
상흔들
하늘의 별은 이렇게 시인 아버지의 상흔으로 남아, 순금으로 만든 못으로 채워졌으리라는 발상이 참으로 빛나고 아름다운 말이다. 시인의 아버지는 구부러진 못일지라도 행복하고 여유롭다.
김현승의 <아버지 마음>에서 ‘집에 돌아오면 아버지가 된다.’고 했다. 집에 돌아오면 아버지는 어린것들이 간직한 깨끗한 피로 씻김을 받는다고 했다.
바쁜 사람들도/ 굳센 사람들도
바람과 같던 사람들도/ 집에 돌아오면 아버지가 된다.//
어린것들을 위하여/ 난로에 불을 피우고
그네에 작은 못을 박는 아버지가 된다.//
저녁바람에 문을 닫고/ 낙엽을 줍는 아버지가 된다.//
세상이 시끄러우면/ 줄에 앉은 참새의 마음으로
아버지는 어린것들의 앞날을 생각한다.
어린것들은 아버지의 나라다 아버지는 동포다.//
아버지의 눈에는 눈물이보이지 않으나/ 아버지가 마시는 술에는 항상
보이지 않는 눈물이 절반이다./ 아버지는 가장 외로운 사람이다.
아버지는 비록 영웅이 될 수도 있지만…//
폭탄을 만드는 사람도/ 감옥을 지키던 사람도
술가게의 문을 닫는 사람도//
집에 오면 아버지가 된다./ 아버지의 때는 씻김을 받는다.
어린것들이 간직한 그 깨끗한 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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