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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현세자 체류지

북경에서 피서산장까지(9)

 

 

소현세자 체류지


청태조묘

83, 오늘 첫 번째 갈 곳은 청나라 태조의 묘이다. 먼 거리가 아니어서 좀 늦게 일어나 830분에 출발했다. 30분 쯤 가다가 특별 경찰이 검문을 한다. 모두들 무슨 일인가 의아해 하는데 여기서는 다른 지역으로 넘어 갈 때 검문을 한다고 한다. 제도가 그렇다는데 어쩌겠는가. 얼마 안가 청태조 묘에 도착했다. 청태조 묘는 복릉, 또는 동쪽에 있어서 동릉이라고 부른다. 청태조의 묘는 붉은색 삼문을 들어가서 한참을 걸어가야 하는데, 수원의 화성처럼 여러 개의 건물이 있다. 건물은 평지에 있고, 누각으로 오르는 계단을 올라가면 다른 누각으로 연결 된 통로가 있고 그 뒤 쪽에 능이 있다. 능은 커다란 봉분만 있는데 봉분 위로는 나무와 풀이 무성하며, 석물이나 다른 치장물도 없으니, 우리나라 왕릉의 위엄과 권위가 그 곳에는 전혀 없는 것이다.

 

청태종묘

청태조묘에서 1시간 동안 머물다 청태종묘(청조릉)로 옮겼는데, 조릉은 복릉보다 훨씬 더 크고 웅장했다. 청태조묘는 하나의 지붕에 세 개의 삼문이 있었는데, 청태종묘에는 세 개의 문에 각각의 지붕이 따로 있었다. 들어가는 길도 더 멀고 그 길에는 많은 문과 건물이 있다. 사람이 걸어 다니는 보도블록에 무슨 내용인지 분필로 쓴 한자가 눈길을 끌었다. 공원처럼 넓고 넓은 경내에는 호수가 있어 작은 배를 타고 뱃놀이를 즐기는 사람도 있다. 역시 누각으로 연결된 길을 따라 가니 맨 뒤편 건물 옆에 능이 있었다. 조릉의 봉분에도 풀이 듬성듬성 나있고 모래흙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거대한 봉분 꼭대기에 큰 나무까지 서 있는 우리나라에서는 볼 수 없는 특이한 형태였다. 태양이 사정없이 내리 비추는 한 낮, 온 몸에 땀이 줄줄 흐른다. 능에서 정문까지 내려 올 때는 열 명이 탈 수 있는 마차 형 셔틀을 타고 나왔다.

 

소현세자 체류지

소현세자 체류지에 가기 전에 '서탑 대 냉면' 간판이 붙어 있는 집에서 점심을 먹었다. 상당히 큰 음식점 이층으로 올라갔다. 아래층에도 사람들이 꽉 들어 차 있었는데, 이층에도 여러 개의 방이 있다. 이렇게 사람이 많으니 맛있는 냉면집인가 보다 생각했다. 한참 만에 식탁에 올려 진 냉면은 어디서 보지도 듣지도 못한 이상야릇한 면이다. 잔치국수처럼 대접이 넘치도록 잔뜩 담겨있는 냉면은 메밀국수 맛도 아니고 쫀득한 냉면도 아닌 덜 삶아진 국수가 불어터진 것 같았다. 더구나 냉면인데 시원하지도 않고 미지근했다. 나는 그것을 도저히 먹을 수가 없었다. ! 배고파~

 

소현세자 체류지는 어디인지 정확하게 알려지지 않아서 이곳저곳 여러 설이 분분했었던 모양이다. 인솔자가 떠나오기 얼마 전 신문에 난 것을 보았는데, 역사학자들이 그동안 조사한 바에 의하면 청나라 궁궐, 덕흥문에서 100m 앞에 있었다고 밝혔다. 덕흥문은 현재의 대로변에 위치해 있으니, 100m 앞이면 바로 큰 길 건너쯤이 된다. 덕흥문기념유지 표지판 앞에서 큰길을 건너 가, '이 건물 자리가 소현세자가 체류했었던 곳일까?' '여기쯤이었을지도 몰라.' 하며 모두들 열심히 살펴보느라 땅을 내려다 보기도하고 건물간판을 올려다보기도 하며 부산을 떨었다. 무능한 아버지 인조 대신 심양으로 끌려간 소현세자는 이곳 어디쯤에서 얼마나 한스러운 세월을 보냈을까. 오랜 세월이 지나 조선에 돌아 온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비운의 죽음을 당했으니, 그에게는 인조의 맏아들로 태어 나 왕세자가 된 것이 죄였던가. 소현세자가 죽지 않았더라면 청나라에서 서양 선교사들과 교류하며 느꼈던 것과, 청나라에서 보고 들은 발전된 문명을 조선에서 펼쳤을 것이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아깝고 안타까운 일이다.

 

청나라 심양고궁

청나라의 심양고궁을 보는 게 이번 여행의 마지막 코스이다. 고궁 정문 앞에 기념품 가게가 죽 늘어서 있는데, 그 중 한 가게 앞에 사람들이 운집해 있었다. 무슨 일인가 궁금해서 가까이 가 보니, 가게 앞에 서 있는 사람이 뭐라고 떠들며 뭔가 휙휙 사람들을 향해 집어 던지고 있었다. 사람들은 손을 높이 내밀어 그것을 받으려 하고, 그 중에 재수 좋은 사람 앞에 떨어지거나 손에 잡히면 좋아서 환호의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나도 얼떨결에 내 쪽으로 날아오는 것을 손으로 잡았다. 금팔찌였다. 그러나 순금이 아닌 도금팔찌이다. 그래도 '아유~ 재수 좋네.'하며 입 꼬리를 귀에 걸었다. 돌아 온 후에는 어디에다 팽개쳐 버렸는지 기억에 없다.

청나라 고궁은 크고 넓었고, 건물은 화려하고 웅장했다. 황제가 집무를 보던 곳, 황후가 거처 하던 곳, 심양고궁 최초의 건축물이라는 대정전 등, 자세히 보려면 하루 종일 걸어 다녀야 할 것 같다. 이곳저곳 돌아보고 유물 전시관에도 들어 가 보았다. 진품을 전시한 유물 전시관에서는 다행히 사진을 찍어도 된다고 해서 옛 청나라 궁중의 보물들을 찍었다. 3시부터 5시까지 두 시간을 돌아 다녔더니 덥기도 하고 다리가 아프다. 늦게 나오는 사람들을 기다리며 기대거나 아무데나 주저앉아 있는 모양이 모두들 지쳐 보인다. 저녁식사는 다시 어제 저녁에 갔던 할매곰탕에서 먹었다. 여전히 맛있다.

심양은 고조선의 마지막 도읍지이며 33대 단군이 승하한 곳으로, 요하 쪽에서 볼 때 심하의 남쪽이어서 심양으로 부른다.

84930분에 인천공항으로 떠나는 비행기를 타야하기 때문에 아침식사도 못하고 550분에 공항으로 출발해, 한국시간으로 1135분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 글쓴날 : [2021-05-05 23:0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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