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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양 한국인거리 <할매곰탕집>

북경에서 피서산장까지 (8)

 

 

심양 한국인거리 <할매곰탕집>

 

심양 가는 길

한 낮의 태양이 뜨겁다. 버스는 조선족이 많이 살고 있는 흑룡강성, 시라무렌강 옆을 지나간다. 이렇게 넓은 땅을 놔두고 고가로 기차 길을 만들고 있는 게 보인다. 내 생각에는 그게 돈이 더 들 것 같은데~ 아무튼 그들은 자동차 길도 아니고 기차 길을 고가로 건설하는 중이다. 완성된 철로엔 기차의 한 칸 길이만큼 긴 대형 트럭에 양을 차곡차곡 포개어 싣고 운반하는 게 보인다. 죽으러 가는 거겠지만 아직은 살아 있는 동물인데 참 잔인한 장면이다.

인간의 손으로 가꾸는 식물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비가 많이 내리지 않는 지역이어서 끝없이 이어져 초원처럼 보이는 밭 여기저기에 관정을 파서 물을 대고 있다. 대부분 빨간 색이거나 더러 남색이기도 한 삼각형의 뾰족한 지붕을 이고 있는 관정은 녹색의 벌판에서 아름다운 풍경을 연출하고 있다. 아침755분에 출발한 후 5시간이나 되었다. 이제야 사람이 살고 있는 마을이 나타나기 시작 했고, 휴게소가 있어서 점심을 먹을 수 있었다. 음식은 토마토와 두부를 버무린 것, 이름 모를 나물 무침, 고기와 생선과 꽤 여러 종류의 음식이다. 배도 고프고 다들 맛있게 먹는데, 아무 음식이나 받아들이지 못하는 내 비위를 야속해하며 죽지 않을 만큼만 먹었다.

 

심양에 가까워 오는 것 같은데 운전기사가 길을 잘 모르는 모양인지 지나가는 택시기사에게 길을 묻는다. 택시기사도 모른다고 하여, 조금 가다가 교통경찰에게 또 묻는다. 아침 8시에 출발하여 오후 4시인데 길을 묻고 있으니 참~ 모두들 지쳐있다. 한 참 만에 길을 제대로 찾아 심양시 외곽에 들어서자 아파트와 높은 빌딩이 보인다. 편리점(便利店)이라는 간판이 달려 있지만 우리나라 6,70년대 구멍가게 같은 상점 앞에 백발의 할머니와 작은 소녀와 어머니가 의자에 앉아 있는 풍경이 한가롭다. 높은 빌딩 앞 광장에는 흰색 양복을 입은 남자들이 한 쪽에 서 있고, 진분홍빛 상의에 검정 바지를 입은 여자들과 파란색 상의에 흰바지를 입은 여자들이 손에 부채와 빨간 천을 들고 춤을 추는 듯 보였다. 스쳐 지나가 버리는 장면을 사진에 담기는 했으나 무슨 행사를 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사진 속 간판에 피자가게 간판이 보이고 이제 개업을 하려는지 사각의 풍선 프레임이 설치되어 있지만 설마 피자집 개업 홍보를 그렇게 크게 하는 건 아니겠지. 역사 유적을 찾아다니고 있지만, 외국의 풍물과 그곳 사람들이 사는 풍속이 궁금해 버스 창밖을 내다보며 열심히 사진을 찍는다.

 

심양 한국인거리 할매 곰탕집

심양시내의 호텔에 들어섰을 때는 540분이었다. 씻고 누워 버리고 싶을 만큼 고단했지만, 짐을 호텔방에 두고 버스를 타고 저녁 먹으러 갔다. 그곳은 서탑(西塔) 한국인 거리이다. ‘서탑은 당신의 방문을 환영합니다.’ 라는 한글 문구의 현수막이 높이 걸려 있다. 보이는 상점마다 모두 한글 간판이다. 심양의 옛 지명은 봉천이다. 심양의 인구는 800만 명인데 한국인이 많이 살고 있다고 한다. 봉천은 단군이 하늘에 제사 지내던 곳이고 고조선의 마지막 도읍지였다. 우리민족과는 참으로 인연이 깊은 역사의 땅인 것이다.

현풍 할매老湯店 이라는 간판이 걸린 식당으로 들어갔다. ‘현풍할매곰탕집이다. 자리에 앉아 잠시 기다리니 뚝배기에 대파가 듬뿍 얹혀 있는 따끈한 곰탕과 맛있어 보이는 깍뚜기와 김치가 나왔다. 파가 너무 많아서 반 쯤 건져내고 소금 간을 적당히 쳐서 국물을 한 수저 떠먹었다. 어라~ 참 맛있네. 곰탕이 원래 이렇게 맛있는 음식이었나? 국에 밥 말아서 깍두기 국물도 좀 넣고, 허겁지겁 숟가락이 안 보일 정도로 퍼 먹었다. 배불러~ 절로 나오는 소리에 맞춰 숟가락을 놓고 보니, 뚝배기에 밥알 한 알, 국물 한 점 없이 깨끗하다.

 

서탑 한국인거리에서 밤 문화 즐기기

저녁밥도 배불리 먹었으니, 하루 종일 버스에 시달리느라 좀 고단하기는 했어도 그냥 호텔로 들어갈 수는 없다. 거리 구경도 하고 카페에 들어가 차도 마시자고 하며 네 명의 여자는 거리를 활보했다. 그 거리의 한국인 상점은 남한 쪽 사람이 운영하는 곳과 북한 사람이 운영하는 곳이 공존하고 있었다. ‘춘천숯불닭갈비’ ‘참 괜찮은 음식점’ ‘심양시 조선족 병원’ ‘주니비어’ ‘초원정, 간판도 다양하다. 보신탕 좋아하는 한국인을 위한 것인지, 정육점처럼 개고기를 저울에 달아서 파는 곳도 있다. 골목길까지 돌아보고 넓고 괜찮아 보이는 호텔에 딸린 카페로 들어갔더니 그곳은 호텔 손님이 아니면 들어 갈 수 없다고 해서 다른 카페로 갔다. 주문을 하고 돈을 내고 직접 가지고 오는 방식이 한국의 커피숍과 같은데, 차를 만들어 내는 여자 직원의 말투는 북한 말씨이다. 세 여인은 바리스타 여성과 기념사진을 찍는다고 한참 법석을 떨고 나는 찍어 주느라 분주했다. 그리고는 얌전히 앉아 우아하게 차를 마시고 있는데, 같이 여행하는 고등학교 선생 두 분이 차를 마시러 들어왔다. 떡본 김에 제사? 아니 사람 본 김에 네 명이 같이 사진 찍어야 한다. 부탁해요~ 그들은 사진을 찍어 주면서 차 맛이 어떠냐고 물었다. ‘맛 그런대로 괜찮아요.’ 그 말에 안심한 듯 그들도 차를 주문한다.

 

모택동 동상

호텔로 돌아오는 밤길을 걸었다. 건물 둘레에 전등을 설치해 놓아 건물 모양대로 프레임만 그림처럼 예쁘게 보이는 길을 걸어서 갔다. 가다가 빌딩 한 쪽에 설치해 놓은 아코디언 켜는 사람 구조물이 있어 또 기념의 행위인 사진을 찍는다. 그리고 아까 봐 두었던 모택동 동상이 있는 공원에 들렸다. 오른 손을 높이 들고 있는 동상은, 좌대의 높이와 동상의 길이가 같아서 얼굴은 볼 수가 없다. 우리에게는 원수였고 중국인들에게는 영웅인 동상 앞에서 모택동처럼 오른손을 치켜들고 포즈를 취해 본다. 호텔로 돌아가기 위해 택시를 잡았다.



 

  • 글쓴날 : [2021-05-05 22:5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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