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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 속 그림 같은 슈리성(首里城)

따듯한 섬 오키나와 (4)

 

동화 속 그림 같은 슈리성(首里城)

 

슈리성은 오키나와 나하시의 언덕 위에 위치해 있는 옛 류큐 왕국의 궁전이다. 주차장에서 성으로 올라가는 길에 슈리성을 둘러싼 멋진 성벽이 보였다. 성벽을 보는 순간 저 안 쪽에 무언가 대단한 것이 있을 것 같아, 호기심에 가슴이 두근대기 시작한다. 성문을 통하여 류큐 왕국의 옛 고성에 발을 들여 놓았다. 성 안에는 정전(政殿)을 비롯한 여러 개의 건물들이 자리하고 있는데, 이 성은 1429년 류큐 왕조가 삼국 통일을 하면서 왕족의 거처로 사용하기 시작하여, 왕국의 번영에 중심적인 역할을 하였던 곳이다.

 

오키나와의 역사

오키나와는 13세기에 형성 된 정치세력 <북산, 중산, 남산> 삼산시대가 100여 년간 유지되면서, 세 나라 모두 중국 명나라와 교류하였다. 슈리성은 이 무렵 오키나와의 다른 성들과 함께 세워진 것으로, 1429년 통일 정권인 류큐 왕국이 수립된 후에 슈리를 수도로 삼고 슈리성을 왕의 거처로 삼았다. 16세기 일본의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명나라와 조선을 정복하기 위해 류쿠 왕국에 협조를 요구했지만, 류쿠는 명나라의 책봉국이라는 이유로 거절하였다. 그때는 일본의 야욕을 비켜 갈 수 있었던 오키나와는, 1609년에 일본의 사쓰마 번이 침공 했을 때는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말았다. 오키나와를 침공한 사쓰마 번은 내정 간섭을 하기 시작했고, 결국 1879년에 일본에 강제병합되면서 오키나와 현으로 바뀌고 말았다.

슈리성은 1453년 왕위 다툼의 와중에 파괴되었다가 재건되었고, 1660년과 1709년에는 화재로 전소되었다. 현재 남아있는 슈리성의 원형은 1715년 건축된 것으로 1879년 류큐 왕국이 일본에 병합된 후에는 일본군의 주둔지로 사용되었다. 1945년 제2차 세계대전 때 일본군이 슈리성 아래에 벙커를 구축하고 연합군의 공격에 대항하자, 연합군의 집중적인 포격으로 성벽과 기초만 남기고 완전히 파괴되었다. 1992년 옛 모습으로 복원되어, 2000년에 류큐 왕국 시대의 고성이 있던 슈리 성터가 유네스코 세계 유산에 등재되었다. 지난해, 20191031일에는 내가 보고 왔던 슈리성에 화재가 발생하여 전소했다는 뉴스를 보고 안타까운 마음이었다.


슈리성 중앙 정원과 정전(政殿)
슈리성 중앙은 넓은 정원으로 국왕이 거처하던 세이덴과 호쿠덴 사이의 광장이다. 내부에 들어서면 너른 광장을 가리키는 말인 우나(御庭)와 류큐 왕국 최대의 목조건물인 정전이 보인다. 각종 의식이 행해질 때는 중앙정원 바닥에 그려진 여러 줄의 타일 장식을 나타내는 센()을 기준으로 관료들이 지위 순서로 늘어선다. 정전 건물과 용주 장식은 일본이나 중국에도 없는 류큐 왕국의 독자적인 형식으로, 정전의 위쪽에 화염보주를 중심으로 상서로운 구름들과 금룡의 조각이 장식되어 있다. 정전 내부 관람이 가능하여 국왕이 사용했던 화려한 옥좌와 시설들을 볼 수 있었고, 사진촬영이 허락된 곳이어서 플래시를 끄고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옥좌 뒤로 위쪽에 결려있는 중산세토(中山世土)라는 편액이 눈길을 끈다. 중산세토 편액은 청나라 4대 황제인 강희제가 류큐 왕국에 하사한 것으로, '류큐는 중국 황제가 책봉한 중산왕의 영원한 토지다'라는 의미이다.

슈리성 중앙 광장 정면에 정전이 있고, 삼면에 회랑처럼 다른 용도의 궁전이 위치해 있다. 우리나라의 궁궐과는 또 다른, 독특하고 아름다운 매력이 마음을 끌어당긴다. 회랑의 긴 복도를 따라 가면 슈리성의 역사를 한 눈에 볼 수 있도록 사진으로 전시해 놓은 전시실이 았다. 중앙 궁궐에서 작은 성문을 통해 바깥쪽으로 나가면 사색의 숲길이 있고, 아름다운 시나키엔 연못도 궁궐 풍경의 일부로 위치해 있다.

높은 고지대에 있는 슈리성 성벽에 기대어 내려다보면 마을과 경치가 한 눈에 파노라마로 펼쳐진다. 성 전체를 둘러싸고 있는 가볍고 단단한 화산섬 오키나와의 현무암성벽은 섬 아래에서 볼 때부터 그 크기의 위용에 압도된다. 거기 한가롭게 기대어 서서 그 옛날 슈리성에 살았던 사람들을 그려보았다.

15세기부터 500여 년간 류큐 왕국을 지켜온 오키나와 인들은, 1879년 일본에 강제 병합되어 행정제도와 언어 등이 일본화 되었어도, 일본열도의 다른 지역들과는 달리 독자적인 역사와 전통을 지켜 나가고 있다. 지금도 오키나와 사람들은 일본인이라 하지 않고 류큐인이라고 말한다.

 

잃어버린 안경과 선글라스

여행 떠나기 전에 캐리어를 조금 큰 것으로 새로 샀는데, 가방가게 점원이 서비스라며 챙겨 준 망사로 된 빨간 색 보조가방에 여행 중 필요한 소소한 것들을 넣고 다녔었다. 슈리성을 다 돌아보고 나오면서 벗어 두었던 선글라스를 착용하려고 가방에 손을 넣고 아무리 휘저어 보아도 잡히지 않는다. 이런~ 얇은 망사가방에 구멍이 나 있는 게 아닌가. 일행들과 같이 다니는데 다시 들어가서 그 넓은 성을 다 찾아다닐 수는 없는 일이다. 사실 이 선글라스는 인천공항에서 비행기를 타기 전에 새로 산 것이어서 매우 아까웠지만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일행 중 한 사람이 사무실에 신고해 놓으면 찾아서 보내 줄 수도 있다고 하기에, 입구에 있는 사무실에 가보니 선글라스는 이미 그곳에 도착해 있었다. 나는 선글라스가 공짜로 생긴 것처럼 좋아했지만, 안경까지 벗어 두었었다는 건 까맣게 잊고 있었다. 나하공항에서 인천으로 돌아가는 비행기를 기다리며 안경을 쓰려고 찾아보니 없다. 집에 돌아와 며칠 후에 안경을 새로 맞출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오키나와 여행은 좋았고, 모든 여행은 언제나 좋다.

  • 글쓴날 : [2021-05-05 22:5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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