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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길 국수학교 교장 - 맛있는 나눔

맛있는 나눔

- 권오길 국수학교 교장

 

공간이 환하다. 풋풋한 소녀들의 웃음소리가 꽃처럼 피었다.

권오길 국수학교에서는 오늘이 가장 예쁜 날이라며 지역 어르신들을 모시고 추억만들기가 한창이다. 교복과 한복을 입고 사진을 찍고, 손국수를 직접 만들어 먹는 행사가 진행된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간 길이다. 권오길 대표(60년생)가 요즘 가장 행복해하는 일이다. 다른 사람들이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 가장 행복하다며 활짝 웃는 모습에 덩달아 기분이 좋아진다.

이번 행사는 문산종합사회복지관(관장 이보경)에서 행복의 새로운 발견이라는 제목으로 진행하는 프로그램 중 일부인데, 권오길 대표가 공간을 마음껏 활용할 수 있도록 지원했다. 사회복지법인 해피월드복지재단에서 운영하는 파주시문산종합사회복지관에서는 이뿐만 아니라, 지역주민(가족·아동·청소년·어르신 모두)의 건강한 삶을 위해 다양한 복지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지역주민이 스스로의 삶을 가꿀 수 있도록 일상생활 지원, 정서 지원, 경제적 지원 등을 하는데, 이 행사에는 주변 이웃인 권오길 국수학교그리고 45평이나 되는 공간을 연결해 더 다양하고 풍부한 경험을 통해 행복이 배가 될 수 있도록 했다. 그곳에는 첼로, 피아노, 일렉기타, 아코디언, 드럼 등이 있고, 노래방 시스템, 카페 등이 있다. 실외에는 오토바이, 오픈카, 요트 등이 있어 사진 촬영 등 추억 남기기에 너무나 좋은 장소이다.

프로그램에 참여한 한 분은 오랜만에 남이 해주는 화장도 받고 곱게 단장하고 교복을 입으니까 여고생이 된 기분이고, 배를 타고 사진을 찍을 때는 선장이 된 것 같았다.”이렇게 좋을 수가 없다.”고 말했다. 또 다른 분은 파티복처럼 생긴 한복은 처음 입어 봤어. 사진 나오면 얼른 가족들한테 보여주고 싶다.”고 했다. “무조건 100, 100점이야.” 옆에 있던 어르신도 거든다. 이춘미(78) 씨는 기억이 안 날 만큼 오래됐지. 수십 년 전 아들 결혼식에서 한복을 입고는 진짜 오랜만이라며, “사진 빨리 나왔으면 좋겠다. 아들 보여주게.”라고 한다. 평균 나이 75세가 넘는데 모두가 소녀같이 생기발랄한 모습이 곱고 눈부시게 아름답다.





사진 촬영이 끝난 후 공간에서는 신나는 음악에 맞춰 몸을 흔들며 반죽을 주무르고 밀대로 밀어 돌돌 말았다가 일정한 간격으로 썰어서 국수를 준비해두었다. 큼직한 새우, 멸치, 호박, 버섯 등으로 맛을 낸 국물은 시원하고 감칠맛이 깊다. 칼칼한 배추김치 그리고 열무와 얼갈이배추를 함께 버무린 김치가 너무 맛있어서 다른 반찬은 필요치 않았다. 긴 시간 내내 참여한 어른들의 얼굴엔 미소가 떠나질 않았다. 문산 당동에서 왔다는 한 분은 젊었을 땐 식구가 여럿이라 자주 해서 먹었지만, 지금은 혼자라서 안 해 먹는데 오랜만에 직접 만들어 먹으니 진짜 맛있다.”마음까지 춤을 춘다,”고 했다. 그렇게 만든 손국수라 그런지 더 쫀득쫀득 맛도 정말 좋았다. 행사를 끝내고 복지관 차에 탑승한 분들한테 손을 흔들며 배웅한 뒤 권오길 대표를 만나 좀 더 이야기를 나누었다.

 

어떻게 이런 행사를 하게 되셨나요?

추억 사진 찍고 나서 짜장면이나 짬뽕을 시킬 예정이라는 말을 듣고 국수학교 프로그램을 넣어서 하자고 제안했습니다. 어른 아이 누구나 다 좋아하거든요. 이틀 동안 같은 준비를 해야 하지만, 저렇게 좋아하시니까 그걸로 충분합니다. 예산이 적으면 적은 대로 진행해서, ‘아름다운재단에 기부합니다. ‘공간뒤뜰에서 음악회를 할 때도 그렇습니다. 자발적 관람비를 내고 좋은 곳에 사용합니다.

중소기업인들 모임에서 장애인 돕기 기부 행사를 꾸준히 하고 있고, 얼마 전에는 양양에서 장애인 해변 캠프를 하는데, 음향 등 지원 요청을 받아서 다녀왔습니다. 내가 필요해서 찾는 곳이 있다는 건 행복한 일이죠.



- 언제부터 국수 관련 일을 하셨나요?

아버지가 오랫동안 마른국수 사업을 해서 다섯 살 때부터 국수 반죽인 밀어 넣는 걸 거들면서부터였습니다. 아버지는 하지 말라고 했지만 그렇게 익힌 솜씨가 유명해지면서 사업을 확장하고 가업을 잇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만드는 국수는 원재료를 직접 가공합니다. 밀가루, 감자, 쌀 등을 일정 비율로 섞어 만들기 때문에 국수 맛이 변함없이 쫀득쫀득하고 구수합니다. 주말에만 천 명 넘게 손님이 옵니다. 그분들이 기대하고 오는 이유가 있겠지요. 아이들이 커서 자기 자녀들을 데리고 올 때 그렇게 기분이 좋더라고요.

 

- 권오길 손국수가 드라마에도 나왔었다고 들었습니다.

60년 동안 손국수를 제조했다는 것이 알려져 2005KBS 드라마 슬픔이여 안녕속 국수 공장 세트, 소품으로 사용될 국수를 조달하는 등 기술 지원을 하게 되었습니다. 국수를 좋아해 자주 오던 노회찬 의원이 가끔 생각납니다. 워낙 검소해서 중고차처럼 낡은 승용차를 타고 와서는 국수를 맛있게 드셨죠. 그전에도 그랬지만, 세월이 지날수록 손님이 물밀듯이 찾아왔습니다. 가맹점을 내달라고 조르는 사람들이 있어서 일곱 곳이나 내고 한때 함께 하는 식솔이 250여 명까지 있었죠.

IMF 때는 벼랑 끝에 선 사람들이 많아 국수를 가르쳐서 재기할 수 있도록 돕기도 했습니다. 있는 사람은 돈으로 다시 다른 일을 찾을 수 있지만, 옥상에 올라갈 일만 남았다는 사람들은 앞이 캄캄하기 때문에 누군가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하죠. 그럴 때 자부심을 느낍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걸로 나눌 수 있으니까요. 조금만 돌아보면, 조금만 손 내밀어주면 행복으로 가는 길을 찾을 수 있다는 걸 알았습니다. 그렇게 재기에 성공해 자녀들을 잘 키우고 성장해 결혼하면서 찾아오기도 합니다. “덕분에 참 행복합니다.”라는 말을 들으면 내가 더 행복합니다.

요즘은 선물용으로 준비한 국수 세트 단체 주문이 많아, 지금도 권오길 국수를 좋아하는 분들이 많은 것에 늘 감사합니다.

 

- 살면서 가장 중요한 게 무엇인가요.

욕심을 버리는 겁니다. 내가 없으면 세상이 없는 거니까요. 그걸 모르고 살았어요. 가난이 너무 싫어서 대물림하지 않으려고 정말 앞만 보고 살았습니다. 그러다가 뇌수술, 직장암 수술, 심장혈관 수술하다 실패하고, 고지혈증 등 죽을 고비를 여러 번 넘겼습니다. 아프고 나니 즐겁고 행복한 일을 하면서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왕성하게 사업을 할 때는 봉사라는 것도 모르고 살았지만, 지금은 다른 사람들이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는 게 나의 가장 큰 행복이 되었습니다.





본점(인천 서구 검단로 789)에는 아내와 아들 그리고 식구 같은 직원들이 있어서 잘 운영하고 있으니까, 나는 놀이터인 국수학교’(파주시 법원읍 술이홀로 1133)에 와서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게 가능합니다. 아버지 때부터 시작해 3대를 이어가고 있으니 100년 전통을 이어가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한부모가정, 시설(보육원 등) 아이들이 자립할 수 있도록 돕고 싶습니다. 일정 나이가 되면 시설에서 나와 독립해야 하는데, 나와서 얼마 안 돼 정착금마저 사기를 당해 어려움을 호소하는 경우를 많이 보았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 안에서 필요한 사람이 되어 자기 역할을 할 수 있도록 기술 전수를 할 계획입니다.

 

맛있는 나눔을 이어가고 있는 권오길 대표의 행복한 국수학교가 오랫동안 이어지길 바란다. 더불어 살아야 우리 사회가 더욱 살만한 세상으로 변한다.

 



인터뷰 작가 김선희 汀彬

kimsunny0202@hanmail.net


  • 글쓴날 : [2023-10-11 2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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