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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밑1 - 멜랑콜리, 그래도 희망은 있다

설밑1 
 -멜랑콜리, 그래도 희망은 있다

신축년(辛丑年)을 보내는 마음 멜랑콜리하다. 단위농협에서 구하여 걸어놓은 글씨 커다란 달력이 달랑 홑 장만 남아 대못박은 자리에서 흔들린다.  
  떨어지는 것은 달력장만이 아니라 마지막 장은 또 다른 미래의 꿈을 가져다 줄 것이라는 희망을 품는다. 식재한지 20년이 넘은 백목련나무 두터운 잎도 겨울바람에 떨어져 썰렁한 마당에 뒹굴고 있다. 낙엽을 쓸어내다 낙엽 진자리는 벌써 꽃눈이 맺혀있다. 꽃이 피기 전 모양이 붓을 닮았다고 목필화(木筆花)라 부르기도 한다. 잎이 지면서 꽃이 피기를 약속하는 백목련의 밝은 예시는 분명히 꽃을 피울 것이라는 희망을 약속하는 것 같아 내심 기분이 좋은 아침이다. 나이를 먹는다고 생각하는 한 해가 아쉽지만, 코로나로 앓고 있는 지구를 생각하니 밝고 건강한 새로운 날을 학수고대한다. 

 새해는 임인년(壬寅年) 범의 해다. 어서 빨리 범이 내려와 모든 악귀를 쫓아주기를 기원해보는 설밑 풍경은 기대 반 설렘 반이다. 사람을 대면하면서 생활해야 하지만, 무슨 잘못이라도 저질렀는지, 비대 면으로 살아야 하니 말이다. 반면에 이 사회는 영원히 비 대면으로 살았으면 좋을 것 같은 뻔뻔한 얼굴로 들끓고 있다.

 조선조의 최대의 문장가인 백운거사 이규보(李奎報, 1168~1241)의 “목필화” 한편이 詩翁의 뜰 안과 비슷하여 감흥이 새롭다.

     천공(天工)은 어떤 물건을 그려 내려고
     먼저 붓꽃을 보내어 피게 했을 까.

     서대초*(書帶草)와 잘 어울려서 
     시인의 뜰에 심어 졌구나.       
*책을 맬 때 썼다는 질기고 긴 풀(맥문동)

     이른 봄 목련꽃 피는데
     꽃봉오리 모습은 붓과 흡사하여라.

     먹을 적시려 해도 끝내 할 수 없고
     글씨를 쓰기에는 적합하지 않네.

 조선조 후기의 대문장가인 명미당(明美堂) 이건창(李建昌, 1852~1898)은 “목련”을 육지에서 제일 고고한 꽃이라 칭송하며 시를 읊었다. 그리고 목련화를 나무에 피는 연꽃이라 했다.

     원래 단청에 그려지는 꽃은 아니지만
     어찌 진흙 속에 썩어서 피겠는가.

     부처도 새로운 법을 설파 할 때 엔
     육지에서 다시 높은 곳을 차지하지 않았던가.

 명미당집(明美堂集)에 수록된 문장이 글을 쓰는 사람에게 새롭고 유익하게 귀감이 되는 구절이 있다. 글이 잘 쓰여 지지 않을 때마다 헤아려보는 명문이 새롭다.
 
 1. 무릇 글을 읽을 때는 반드시 천천히 심구하고 익숙히 사념해야 한다.
 2. 그러므로 씹어보고, 깨물어 보고, 삶아 익히기도 하고, 단련하기도 하고, 당기기도 하고, 떨어뜨리기도 하고 끌기도 한다.
 3. 그리하여 그 글을 억양하고 곡절하며 선회하고 반복함으로 소리가 울려 아름다운 운율이 있어야 한다.
 4. 참으로 능히 하루에 한 번 고쳐서 일 년에 몇 편을 짓고, 또 몇 편중에서 산산하여 남겨두는 것이 몇 편이 되어야 한다.
 5. 이와 같이 하기를 10년 동안 하면 진실로 한 권의 책으로 엮어질 것이다.

상쾌한 겨울아침 눈 덮인 고고한 목련나무 아래 떨어진 잎을 쓸어내며 한편의 시를 음미한다. 

     목련낙엽이 가볍게 나는 이유

                                                           sisinam

     삽짝왼편에 심은 목련나무 눈부신 눈꽃
     봄날 아침, 하얀 목련을 표절하여
     면사포 입은 입술파란 새색시 닮았어라

     도둑고양이 숨죽은 발걸음처럼 눈꽃을 훔쳐보며
     아름다움은 더럽혀지기 전에 사라지는 것이라고

     순결한 사랑을 눈꽃 핀 목련나무 아래서
     질투의 바람이 쏜 화살이 순백의 심장을 뚫고
     붉게 더렵혀지기 전 하얀 꿈으로 고백하리라

     동면 중 꿈꾸는 목련나무에 앉은 눈꽃
     잠꼬대하다 뒤틀린 몸짓에 놀라 떨어질세라
     질투의 바람이 쏜 화살이 순백의 심장을 뚫고
     붉게 시들기 전 사랑의 말 고백하리라

     목련나무 낙엽이 가벼이 나는 이유가
     봉곳한 꽃 몽우리를 남겼기 때문이라면
-asistch@hanmail.net
  • 글쓴날 : [2022-01-27 22:5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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