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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혹의 빛깔

사과 1
사과 1
-유혹의 빛깔

7월의 불볕을 이고지고 문산읍 널다리마을 “ㅅ”교장의 사과밭을 훔친다. 잘 정돈된 과목에서 농염하게 익어가는 여인의 붉은 볼을 울타리너머로 흠모한다. 몸으로 실천하며 땀으로 보상 받는 철학자 같은 그는 진정한 실천주의자이다.
 “ㅅ”교장의 사과밭을 보노라면, 네덜란드 철학자 스피노자의 명구가 번뜩인다.
 “내일 지구가 멸망하더라도 나는 오늘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는 결의가 엿보인다. 아무리 어려운 일을 당하더라도 굴복하거나 포기하지 말며, 위기를 하나의 주어진 조건이라고 생각하고 이를 무시하면 꿈과 희망을 가지고 노력하면 위기를 극복 할 수 있다는 뜻이다.
 이 말은 스피노자의 말로 알고 있으나, 유럽에서는 종교개혁가 마르틴 루터가 한 말이 정설로 알려져 있다. 루터의 어릴 때 쓴 일기장에 이 글귀가 있다. 그리고 독일의 아이제나흐라는 시골마을에 이 글 귀가 새겨진 루터의 기념비가 한 그루 사과나무아래에 새겨져있다. 이 명구는 지나간 옛이야기가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현재와 미래에도 적용된다. 
 코로나로 위기에 빠져 풀이 죽은 세계인들에게 던져주는 신선한 메시지로 살아있는 명구로 새겨야겠다.
 중국의 도가 사상가인 열자(列子)의 말도 이와 상응한다. “살 수 있는데 사는 것이 천복이요. 죽을 수 있는데 죽는 것 또한 천복이라 했다. 

 사과는 태초의 열매였을까?
 구역성경 중 창세기는 여호와가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여호와는 땅의 흙으로 여호와의 형상과 모양대로 사람을 만들어 생기를 불어 넣는데. 그가 인류의 조상 아담이었다. 그리고 동방의 에덴에 동산을 만들어 경작케 하였다. 그 동산에는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가 있었고,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도 있었다. 여호와는 아담에게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절대 따 먹지 말라고 명령한다.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네가 반드시 죽을 것이라고 말했다.
 아담이 혼자 있는 것이 안타까워 여호와는 흙으로 생물들을 빚어 동산에 보낸다. 아담을 깊게 잠들게 한 다음 갈빗대 하나를 취하여 사람을 만들어 아담에게 데려왔고, 그를 이브라 불렀다. 그러나 여호와가 지은 들짐승 중 가장 교활한 뱀은 명령을 어기도록 여자를 유혹한다, 여자가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보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러운 열매를 따 먹게 만들었고, 남자에게 주어 그도 먹었다. 그들은 눈이 밝아져 자신들이 벗을 줄 알고 무화과나무 잎으로 옷을 만들어 몸을 가렸으며 여호와를 피해 숨는다. 여호와는 명령을 어긴 그들에게 노동과 임신, 출산의 고통을 부여한다. 

 어떤 기록에도 선악과가 사과라는 기록이 없다. 1667년 존 밀턴은 선악과 내러티브를 모티브로 실낙원의 대서사시를 썼다. 그러나 사과라고 믿게 하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여호와는 먹지 말 것을 명령하고 먹을 수 있는 유혹의 사과를 심어 놓고 사람을 시험의 대상으로 삼은 것이다. 사람은 여호와가 시험에 빠트려 허우적거리며 살게 만든 불완전한 피조물이다.  

 시시남은 사과껍질째 베어 물고 달콤한 과즙을 빨던 유년의 그리움을 속삭여본다.

     사과껍질/시시남

     사과껍질째 베어 물던 아이
     사과나무 아래서 덥석 깨문 풋사랑이 아프다
     지금도 그 사과나무에 초록그리움이 열릴까
     아픔으로 익은 사과는 지금 꽃을 피울까
     사랑의 약속이 둥글게 열리고
     이별의 약속이 둥글게 열리고
     사과나무 아래서 덥석 깨문 약속을 기억하고 있을까
     붉은 사과껍질을 뱀 허물처럼 발라먹는 이유는
     그때를 기억하고 싶은 아픔 남기려는 허물일까
     껍질째 깨문 풋사랑의 맛은 새큼하고
     껍질을 벗겨 먹는 농익은 사랑의 맛은 들큼해
     사과나무를 기억하고 있는 초록구름 이는 언덕
     까까머리와 단발머리가 나누었던 사랑이야기를
     지금도 기억하고 있을까
     사과는 초록껍질 채 새큼하게 베어 먹는지를
     사과는 붉은 껍질을 뱀 허물처럼 깎아 먹는지를 

 김혜순 시인의 “잘 익은 사과”에서 자전거 바퀴가 둥글게 길을 깎아낼 때마다, 고향마을만큼이나 큰 사과를 큰 사과를 벗기는 풍경의 맛이 시큼하다.

     백 마리 여치가 한꺼번에 우는 소리
     내 자전거 바퀴가 치르르치르르 도는 소리
     보랏빛 가을 찬바람이 정미소에 실려 온 나락들처럼
     바퀴살아래에서 자꾸만 빻아지는 소리
     처녀 엄마의 눈물만 받아먹고 살다가
     유모차에 실려 먼 나라로 입양 가는 
     아가의 뺨보다 더 차가운 한 송이 구름이
     하늘에서 내려와 내 손등을 덮어주고 가네요
     그 작은 구름에게선 천 년 동안 아직도
     아가인 그 사람의 냄새가 나네요
     내 자전거 바퀴는 골목의 모퉁이를 만날 때마다
     둥글게 둥글게 길을 깎아내고 있네요
     구멍가게 노망든 할머니가 평상에 앉아
     그렇게 큰 사과를 숟가락으로 파내서
     잇몸으로 오물오물 잘도 잡수시네요

장종국 시인
-asistch@hanmail.net 
  • 글쓴날 : [2021-10-05 20:4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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