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대 l 축소

바다가 파노라마로 펼쳐지는 영응사

베트남의 중부 다낭여행 (7)

 

바다가 파노라마로 펼쳐지는 영응사

 

928일 다낭 여행의 마지막 날이다. 5일간의 여행이지만, 오고 가는 날 빼고 나면 다낭과 후에를 온전히 여행 한 것은 3일간 뿐이다. 짧은 시간동안 많은 곳을 돌아보느라 숨 가빴던 일정이었다. 오늘은 후에에서 다낭으로 가서 세 군데의 유적을 더 보고 인천 공항으로 갈 간다. 다낭에 도착해서 한적한 탐 리조트에 있는 현지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다. 식당 대문을 들어서니 안쪽까지 정원이 길게 펼쳐져 있고, 삼국지에 나오는 인물들의 동상이 고풍스럽게 서 있다. 정원을 지나 깊숙이 들어앉은 식당에서, 맛있는 해산물 볶음밥과 새우와 조개 튀김과 돼지고기 요리로 점심을 먹은 후, 오늘의 일정이 시작 되었다.

 

돌계단이 웅장한 사당과 전적지(戰迹地)

기록해 두지 않아 이름을 알 수 없는 어느 사당, 입구에서부터 저 멀리 돌로 지은 건축물이 보였다. 사당으로 올라가는 돌계단은 넓고 높아 웅장하고 신묘한 기운이 느껴졌다. 높은 탑을 둘러싸고 그곳에도 수십 개의 삼국지 영웅들이 세워져 있다.

영흥사로 가는 길에 베트남 전쟁 유적지인 전적지에 들렀다. 버스가 스쳐 지나가는 바닷가 근처 공동묘지에 전쟁에 희생된 젊은이들의 무덤이 보이고, 버스가 산꼭대기에 이르자 도로변 오른 쪽에 위치한 전적지에는, 다 무너진 요새가 골격만 남은 채 서 있었다. 요새로 올라가 보니 처절했던 전쟁의 상흔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하필 폐허가 된 무너진 요새 위에서 젊은 연인들이 드레스와 턱시도를 입고 웨딩 사진을 찍고 있다. 요새 건너편에 마트를 겸하고 있는 카페에서 관광객들을 위해 먹을 것과 차를 팔고 있다. 우리 일행은 카페에 앉아서 시원한 차를 마시며 잠시 쉬어 간다.

 

베트남 최대 불상이 있는 영흥사

손짜(Son Tra) 반도를 돌아들어 영응사 언덕으로 올라간다. 손짜 반도의 해변이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위치한 영응사는 2003년 창건했으며, 67m(아파트 30층 높이)의 해수관음상이 있는 사찰이다. 베트남에는 역사적으로 바다에서 죽은 사람들이 많다. 베트남 전쟁 때도 그랬고, 통일 베트남에 공산정권 들어서자, 수많은 사람들이 탈출하는 과정에 보트피플이 되어 바다에서 떠돌다 죽었다. 그 후, 베트남 정부에서는 난민들을 다시 받아들였다. 그 사람들이 조국에 돌아와, 함께 바다를 떠돌다 먼저 간 동료들의 영혼을 달래기 위해 절을 세운 것이다. 바다에서 죽은 사람들의 '영혼의 안식처'가 되도록, 해수관음상을 세우고 18나한상을 모셨다. 영응사에 들어가기 전 주차장에서 9층 석탑이 먼저 반긴다.

영흥사 정문은 여섯 개의 문을 층층이 쌓아올린 패방(牌坊) 형식의 삼문이다. 대웅전 입구에는 포대자루에 시주를 매고 다니며 여러 사람들에게 복을 나누어 준다는 포대 화상이 잔뜩 부른 배를 드러내고 함박웃음을 짓고 있다. 절 마당에 들어서자마자 웅장한 대웅전이 보인다. 하늘로 치켜든 용마루와 처마 그리고 기둥에는 용문양이 화려하다. 중국 문화의 영향을 받은 사원임을 금세 알 수 있다. 대웅전 안에는 불상 외에도 옥황상제, 공자상, 관우상 등 여러 신상이 있고, 각각의 신상 앞에는 많은 사람들이 기도를 하고 있다. 수많은 분재나무를 보며 절 마당을 한 바퀴 돌아 해수관음상 앞에 갔다. 해수관음상은 커다란 연꽃 대 위에서 바다를 내려다보고 있다. 관세음보살은 고통 받는 중생을 구제하는 보살로, 특히 해수관음은 거친 바다 일을 하는 사람들을 보살피는 관세음보살이다. 그래서 해수관음상은 법당에서 나와 높은 좌대 위에서 바다를 바라보고 있다. 해수관음상 아래에 원형 법당이 있다. 그 앞에도 풍만한 웃음을 짓고 있는 포대화상이 있는데, 위안을 얻으려는 사람들이 하도 만져서 배가 반질반질하다. 언덕 저 아래 바다가 파노라마로 펼쳐져 있고, 나는 그 앞 의자에 걸터앉아 바다를 바라본다. 비취색 드넓은 바다를 감싸 안고 미케비치 해변이 편안이 누워있다. 해수관음상이 내려다보고 있는 바다가 절 마당에 들어 온 인간들의 고뇌를 파도에 실어 모두 거두어 가리라.

다낭은 남북으로 길쭉한 베트남 땅의 동쪽가운데 자리한 항구 도시다. 베트남 중부지역의 국제무역항이자 최대 상업도시다. 그러나 베트남 땅에 외세가 몰아칠 때마다 그 중심에 다낭이 있었다. 1847, 프랑스는 다낭으로 전함을 보내, 배들을 침몰시켰다. 1858년 베트남이 프랑스와의 전쟁에 패배했을 때는 다낭은 프랑스령이 되었다. 그 후, 1963년에 베트남 전쟁이 일어나자 이번엔 미군이 상륙했고, 다낭은 남베트남군과 미군의 주요한 공군 기지로 활용되었다. 그리고 한국의 청룡부대가 주둔했던 곳이기도 하다. 아름다운 휴양 도시 다낭은 베트남 근대 역사에 아픈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한 곳이다.

 

인천공항의 아침

한국식당 사랑채에서 삽겹살과 김치찌개로 저녁을 먹고, 한국으로 돌아가기 위해 다낭 공항으로 이동 하였다. 공항으로 가는 길에 야경을 보려고 바다가 있는 광장에 잠깐 내렸다. 형형색색의 불빛이 밤바다에 아름답게 퍼져 나가며, 이국에서의 마지막 밤을 더욱 낭만에 젖어들게 한다.

자정에 출발한 비행기는 새벽 525분에 인천공항에 도착하였다. 짐을 찾고도 공항버스가 출발할 630분까지는 시간이 많이 남아있어, 같이 간 친구와 공항 분식집에서 따듯한 라면을 먹었다. 비로소 들떠 있던 여행의 기분을 마음 깊숙한 곳에 내려놓는다. 버스 승강장에서 바라본 하늘에 아침이 밝아 오기 전, 어둑신한 영혼의 시간이 동쪽 하늘로부터 어둠을 몰아내며 여명이 솟아오르고 있었다.

  • 글쓴날 : [2020-01-15 11:23:43]

    Copyrights ⓒ 파주신문 & www.pajunews.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전화면맨위로

확대 l 축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