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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에 천국과 지옥을 넘나들다

베트남의 중부 다낭여행 (4)

 

 

하루에 천국과 지옥을 넘나들다


 

<27일의 아침>

3일차 아침, 오늘의 일정을 위해 호텔 조식을 든든히 먹으려고 레스토랑에 들어섰으나 오늘도 역시 모닝 빵만을 접시에 담았다. 커피를 머그잔 가득히 따라 일행이 앉아 있는 식탁에 앉으니 겨우 그것만 먹고 어쩌려고 그러느냐고 여기저기서 걱정 어린 말들이 쏟아진다. 워낙 비축해 둔 영양분이 몸속에 가득 쌓여 있으니 걱정 말라고 너스레를 떨며, 어디서나 변함없는 맛의 버터를 살짝 바른 모닝 빵과 과일과 커피를 먹었다. 여행에서 음식을 잘 못 먹는 건 비위가 약한 내 위장 탓이니 누굴 탓할 수 있겠는가.

 

<천국과 지옥 동굴 가는 길>

오늘의 첫 번 째 일정은 오행산(五行山)의 천국과 지옥동굴이다. 오행산은 베트남 다낭 시내와 호이안 사이에 위치하고 있어, 다낭 시내에서 20분 정도 가야 한다. 5개의 낮은 봉우리로 이루어져 있고 산 전체가 대리석으로 되어 있어서 마블마운틴(marble mountain)으로도 불린다. 예전에는 대리석 채취를 많이 했다는데 요즘은 거의 안한다고 한다. 산에 가까이 갈수록 길가에 대리석 조각품을 파는 집이 많이 보인다. 동굴 아래 매표소가 있는 광장에는 이미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가이드가 표를 사는 동안 우리 일행은 기웃기웃 기념품점을 들여다보기도 하고 이곳저곳 구경을 하였다. 대리석 산 아래 기념품점에는 거의 대리석으로 만든 기념품이 많이 진열되어 있었다. 우리는 구경 하다가 더위에 못 이겨 시원한 음료수를 사 마셨다.

티켓을 구입한 가이드를 따라 동굴로 들어섰다. 동굴은 크고 웅장했다. 오행산 동굴 들어가는 입구 다리 위에 열두 띠의 짐승들이 조각되어 있다. 열두 띠 중에는 특이하게 한국에는 없고 베트남에만 있는 고양이 띠가 있다. 천국과 지옥 테마가 있는 동굴 안에는 천국과 지옥이 같이 있다. 입구에서 다리를 건너 어두운 동굴로 들어섰다. 다리 아래 물속에 여러 개의 손이 불쑥 솟아 나와 있다. 다리를 건너지 못하고 물에 빠진 인간들의 손만 보인다. 다리를 건너면 본격적인 지옥으로 가는 길이다. 동굴이 그리 길지는 않지만 어둠 침침 하고 습기로 인해 돌이 매우 미끄러웠다. 동굴은 수직으로 되어 있지 않고 계단을 따라 밑으로 내려가는 길이 지옥길이고, 위로 올라가서 돌아 나오는 길이 천국이다. 물이 고여 있는 곳도 있어서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옮겨야 한다.

 

<지옥동굴>

얼마쯤 가니 천국으로 보낼지 지옥으로 보낼지 판결하는 저승 재판관들이 줄지어 서있었다. 내려가는 왼쪽으로 지옥문(地獄門)이란 커다란 간판이 세워져 있다. 그 아래 지옥이 내려다보인다. 지옥문으로 내려가는 길 곳곳에 해골조각상들이 세워져 있고, 귀신도 있다. 지옥으로 내려가는 천장은 매우 낮고 어두워 희미한 전깃불이 길을 안내하고 있다. 뱀이 사람을 잡아먹는 조각상이 보이고, 여자의 목을 조르고 톱으로 여자의 몸을 자르고 있는 조각상도 있다. 옥은 아비규환 그 자체였다. 고통으로 비틀어져 절규하고 있는 인간, 커다란 도마뱀처럼 생긴 짐승에게 짓 밟혀 꼼짝도 못하고 비명을 지르는 형상의 인간 등, 온갖 고통으로 일그러진 인간 형상들의 조각이 정말 지옥에라도 온 듯 섬뜩 했다. 지옥 형벌은 너무도 끔찍했다. 저승사자가 죄인을 데리고 지옥으로 들어가는 조각상도 있다. 정말 지옥에 온 것 같았다. 누군가 앞으로 착하게 삽시다.”라고 한다. 지옥 광경을 보면서 모두들 그런 심정이었을 것이다. 작은 광장이 나온다. 사람들이 죽었을 때 심판을 받는 모습을 재현하여 놓은 조각상이 세워져 있다. 이곳이 지옥의 끝이다. 심판받는 조각상 앞에서도 앞으로 어질고 착하게 살겠습니다.”라고 말을 하는 사람이 있다.

 

<천국 동굴>

천국으로 가는 길은 하늘로 나 있고, 빛이 점점 밝아진다. 천당에 올라가니 지옥에 살다가 천당으로 들어온 것 같았다. 천당에는 시원하면서 물 흐르는 소리도 들려온다. 물 흐르는 쪽으로 바라보니, 편안한 얼굴을 한 신성불보살들이 곳곳에서 반겨준다. 지옥은 계단이 비교적 완만했던데 비해 천국계단은 매우 가파르다. 죄를 짓기는 쉽고, 덕을 닦기는 어렵다는 것일까. 계단도 그렇고, 구조 자체가 천국계단이 체력적으로도 훨씬 힘이 들었다. 한참을 올라가니 커다란 광장이 나타난다. 광장 중앙에 커다란 부처님 조각상이 화려한 빛을 받고 세워져 있다. 동굴 곳곳에 여러 가지 모양의 조각상들이 세워져 있다. 천국에는 천장이 어마어마하게 높다. 천장 동쪽에서 빛이 들어오는 구멍이 보인다. 베트남 전쟁 때 이 동굴 속에 베트공들이 점령하고 있었다고 한다. 미군이 이 동굴에 폭격을 가해 동굴 동쪽에 구멍이 뚫린 것이라 한다. 다시 안으로 걸어 들어가니 두 번째 광장이 나타났다. 두 번째 광장 천장에도 햇빛이 들어오는 구멍이 있었는데, 용이 승천한 구멍이라고 하고, 이곳에도 커다란 부처님 조각상이 세워져 있었다. 염불소리가 들려온다.

어둡고 축축했던 동굴에서 밝은 밖으로 나오니 시원한 공기가 얼굴에 상큼하게 와 닿는다. 생각해 보니 정말 하루에 지옥과 천국을 다녀 온 것 같다. 일행의 얼굴빛을 살펴보니 지금까지 가지고 있던 마냥 즐거운 여행의 행복한 모습이 아니라, 진지하고 비장해 보이는 표정들이다. 뭔가 느낀 것이 많은 표정들이다. 죄 짓지 말고 착하게 살고, 불우한 사람을 돕고 살아야겠다는 마음이 저절로 든다. 그러나 간사한 사람의 마음, 이런 마음이 얼마나 지속 되겠나. 돌아가 일상에 젖으면 아마 곧 잊어 질 것이다.


  • 글쓴날 : [2020-01-15 11:0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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