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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

극단과 확증편향이 난무하는 시대가 되고 말았습니다.

가장 가까이 내 휴대폰이나 컴퓨터로 전해지는 온갖 종류의 SNS들이나 방송, 신문 등의 매체에서는 말 할 것도 없고, 내 주변의 지인, 친구 심지어는 가족 간에서도 이런 모습은 나타나고 있습니다.

내가 아닌 가 하는 모든 말이나 사상, 행동 양식은 귀담아 들을 일이 없는 거짓이거나 사악한 배경을 가진 음모이거나, 아무리 좋게 말해도 뭘 모르는 사람으로 치부되기 일쑤입니다.

이런 현상은 기술이 발전할수록 점점 심해지고 있습니다. 과학과 기술이 발전할수록 인간의 생활과 사고가 풍부해질 것이라는 믿음은 이제 순진한 기대에 불과합니다.

유투브나 각종 포털에 장착된 인공지능 알고리즘은 우리를 점점 한쪽으로만 몰아가고 있습니다. 보고 싶은 것만 보는 수준이 아니라 이것만 봐라라고 우리 두뇌와 시야를 점점 무인도로 인도하고 있습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우리는 인간관계에서 절대적으로 필요한 소통이나, 이해, 관용 따위는 찾아볼 수 없는 불통과 몰이해, 불관용이 난무하는 극단의 시대로 치달리고 있습니다.

꿩 사육장에서는 꿩에게 안경을 착용시켜 정면을 볼 수 없게 만든다고 합니다. 이렇게 하면 꿩의 야생성을 순화시키고, 카니발리즘 발생을 억제시켜 준다고 합니다.

지금 우리도 사육장에 갇힌 꿩처럼 진실이라는 정면을 바라보지 못하게 하는 안경을 끼고 있지는 않을까요?

그 결과 온갖 종류의 가짜뉴스와 거짓말, 또는 호도와 왜곡 등에 현혹당하고 있지는 않을까요? 꿩의 야생성이 순화되는 것처럼, 진리에 대한 탐구나 진실추구와 같은 인간 본연의 이성이 없어져버리는 것은 아닐까요?

저는 이 지점에서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라는 지극히 평범한 상식을 이야기 하고자 합니다. 이 말은 지금은 돌아가신 언론인이자 학자였던 리영희 선생의 유명한 책 제목입니다.

선생이 이 책을 썼을 당시만 해도 말 한마디 때문에 감옥을 갈 수도 있었고, 목숨이 어떻게 될 수도 있었던 엄혹한 시절이었습니다.

저는 당시를 횡행했던 군사독재를 말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좌나 우의 이념을 말하려고 하는 것도 아닙니다. 상식을 말하려는 것입니다.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는 지극히 평범하고, 기본적인 상식을 회복해야 한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한 쪽 날개가 없는 새가 날아갈 수 없는 것을 우리는 너무 쉽게 상상할 수 있습니다. 인간의 역사를 돌아보면 어떤 이념이든, 사회 현상이든 극단으로 치달을수록 그 말로는 인간을 참혹하게 만들었습니다. 히틀러가 그랬고, 스탈린이 그랬고, 적군파도 그랬습니다. 인간이 인간을 죽고 죽이는 학살이나, 전쟁, 억압, 핍박 등 다양한 형태로 인간의 삶을 고통스럽게 했습니다. 이런 일이 지금은 없다고 자신 있게 말 할 수 있습니까?

이념이나 사상은 날개에 불과하고, 신동엽 시인이 이야기했던 껍데기에 불과 합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껍데기가 본질을 지배하고 있는 호도된 세상에서 살고 있습니다.

인간은 이념이나 사상 없이도 살 수 있습니다. 오히려 그런 이념이나 사상을 통해서 기득권을 강화하고, 지배를 순조롭게 하는 장치로 이용했을 뿐입니다.

우리 모두가 극단의 굴레에 빠져서 서로에게 삿대질하고 진흙탕 싸움을 하는 것이 과연 우리 삶을 바꿔줄 수 있을까요?

문재인을 끌어 내리, “수구 틀딱이나 토왜만 없으면 하는 태도로 우리 삶이 좋아집니까? 저 높은 곳에서 진흙탕 싸움을 하고 있는 천한 것들을 비웃으며 권력과 영화를 영속하기 위해서 주판알을 튕기고 있는 그들을 바라봐야 합니다.

그들이 쳐 놓은 불평등과 억압을 향해서 돌을 던지고 싸워야 할 때입니다.

이제는 날개나 껍데기가 아닌 몸뚱이라는 진실을 봐야 합니다.

껍데기는 가라. 사월도 알맹이만 남고 껍데기는 가라.”

4월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 글쓴날 : [2020-01-15 11:0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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