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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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현 객원칼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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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열했던 4.10 총선이 끝난 지도 20여 일이 흘렀습니다. 격전의 숨 막힘도 이제 거의 진정이 된 모습입니다. ‘다이내믹’하기로는 세계에서 따라올 데가 없는 우리나라다 보니 선거 후 20일은 그날의 강렬했던 기억을 지우기에 충분한 시간입니다.
돌아보면 지난 총선을 관통한 것은 ‘심판’이었습니다. 불과 2년 전 비록 0.7%의 차이지만 국민들은 지난 정부를 ‘심판’하여 ‘윤석열 대통령’을 만들었고 이어진 지방선거에서도 압도적인 지지를 보낸 바 있었습니다. 그런 국민들이 무엇 때문에 이번에는 윤석열 정권과 국민의 힘에 분노의 투표지를 던졌던 것일까요?
사실 그동안 정권이 행했던 여러 가지의 비민주적이고 독단적인 행태를 알면서도 정권에 우호적인 투표를 할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원칙과 상식, 공정’ 등의 가치는 너무나 훼손돼서 너덜너덜해졌습니다. 몇 가지의 사례를 들어보겠습니다.
이미 ‘역사적 사실’로 확립된 과거의 역사적 사건이나 인물들에 대해서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재단해서 모욕하고 진실을 왜곡했습니다.
159명의 발랄한 젊은이들이 떼죽음을 당했는데도 우리가 마주한 것은 영정 없는 분향소였고, 생때같은 해병대 젊은이가 부당한 명령으로 인해서 물에 떠내려갔어도 아무도 책임지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너무나도 우연히(?) 대통령의 처갓집 사람들이 소유한 땅이 많은 곳으로 고속도로 노선이 갑자기 바뀐 의혹에 대해서도 묵묵부답입니다.
황당하게도 대통령의 부인이 사사로이 명품 백을 태연하게 받아 챙기는가 하면, 주가조작으로 대변되는 부인의 ‘과거 비리’를 조사하자는 국회의 요구에 대해서도 거부권을 행사해버렸습니다. 각종 권력기관의 내로남불은 셀 수도 없습니다.
이러고도 살아남았다는 것이 오히려 신기할 정도입니다. 다가오는 새로운 국회에서는 이 모든 것들을 확실하게 따져서 국민들 가슴에 맺힌 멍울들을 풀어줘야 할 것입니다.
이제 우리 지역을 돌아봅니다.
파주갑의 윤후덕 후보는 무려 63%의 득표를 했고, 파주 을의 박정 후보도 10%에 육박하는 넉넉한 차이로 승리했습니다. 현역 의원인 두 후보가 이렇게 낙승을 할 수 있었던 요인으로는 여러 가지가 있겠습니다만, 전자에 말한 ‘심판’의 거센 흐름이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전적으로 두 후보들만의 역량으로 그런 낙승을 이루었다고는 말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게다가 이제 두 의원은 햇병아리 초선의원이 아닙니다.
4선 의원, 3선 의원이라는 계급장이 어깨에 달려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자랑스럽겠지만 그만큼의 무게가 더해진 겁니다. 이제는 뭐가 부족해서, 뭐가 모자라서 못했다는 변명이 통하지 않을 것입니다.
시민들도 이제는 그들이 선거 기간 중에 내놓은 약속들을 하나하나 기억해서 왜 안 하는지, 못하면 왜 못하는지, 그렇다면 왜 그런 약속을 했는지를 냉정하게 따져야 합니다.
그렇지 못하면 시민들은 그저 분위기에 휩쓸려 분별없이 표나 찍는 존재로밖에 인식되지 않을 것이고, 그렇게 무시당하는 시민들을 위해서 애써서 뛸 정치인은 아무도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시민들에게 선출된 공직자들은 사실상 ‘자유’가 없습니다.
시민들을 위해서 뼈 빠지게 봉사할 ‘자유’와 성과를 이뤄내서 시민들을 기쁘게 할 ‘자유’밖에는 없는 것입니다.
또다시 시민들의 차례입니다. 보다긴 호흡으로 그들의 게으름을 감시하고 성과를 독촉하고 잘못을 질책해야 합니다. ‘심판’이라는 투표지를 들고 부릅뜬 눈으로 바라보아야 합니다.
다음 선거에서 또다시 분노하고, 또다시 ‘심판’하는 수고로움을 그나마 덜어내려면 평소에도 ‘심판’하는 습성이 필요합니다.
선거는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김순현 객원칼럼리스트/ pajuok@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