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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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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초

 

시인 장종국

 

연일 퍼붓던 장맛비 멈춘 아침나절 푸서리에 일군 콩밭을 살폈다. 콩보다 웃자란 풀 섶이 낯설게 펼쳐진 푸른 세상이 장관이다.

 

절로자란 들풀이 싱싱하다

 

sisinam

 

푸서리에 일군 밭떼기 들풀이 무성타

길섶부터 접근을 훼방 놓는 들풀을 소탕하기 위해

풀베기 둘러메고 조자룡 헌 칼 휘두르듯 들풀을 벤다

 

지난해 불가물로 서리태 농사 망친 일 때문에

서둘러 밭떼기를 갈아 평정하기로 작심했으니

6, 파종이라 밭떼기 살피러 갔으나 무릎까지

웃자란 들풀로 경계가 모호하다

완전무장이 필요한 전쟁이라 장화신고 맥고모자

삐뚜루 눌러쓰고 색안경 걸친 야전장군차림하고

조자룡 헌 칼 들어 2차전 선전포고를 했다

밭떼기주변까지 들풀이 잘리면서 내 뿜는 피 냄새가 신선하다

 

서리태 세알씩 심는다

한 알은 하늘님 드시고 한 알은 흙님이 잡숫고

한 알은 사람이 먹는다는 말 그럴싸하다

 

8, 서리태의 발육이 궁금해서 밭떼기를 찾으니

서리태의 존재를 덮어버린 들풀이

오뉴월여천 댑싸리 밑에 늘어진 개 팔자로다

잘려도 살아나고 뽑아도 돋아나는 불사의 들풀에게

양해를 구하여 촌부의 일거리와 먹을거리를

조금 남겨 달라고 사정 해 볼 량이다

영원한 패자는 촌부요

영원한 승자는 절로자란 들풀님임을 선언하노라

 

콩밭을 점령한 풀치기로 흘린 땀은 장맛비보다 많았다. 기진한 몸뚱이를 이끌고 버드나무 그늘에서 쇠한 촌부는 기력을 찾을 때까지 누워 구름의 희롱을 못 본 채하였다.

 

풀은 세상에서 흔하고 연약하지만 한편으로 일부러 키우지 않아도 자라는 자생력이 강한 식물이다. 이런 풀의 이미지로 예로부터 민초(民草)라 하여 역사적으로 권력을 쥔 자들로부터 억압을 받으면서 꿋꿋하게 살아온 민중과 겹쳐진다.

 

민중의 끈질긴 생명력으로 표현한 김수영의 <> 모더니즘의 시가 한계를 극복하고 건강한 역사의식을 획득하였다.

 

풀이 눕는다

비를 몰아오는 동풍에 나부껴

풀은 눕고

드디어 울었다

날이 흐려서 더 울다가

다시 누웠다//

풀이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

날이 흐리고 풀이 눕는다

발목까지

발밑까지 눕는다

바람보다 늦게 누워도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고

바람보다 늦게 울어도

바람보다 먼저 웃는다

날이 흐리고 풀뿌리가 눕는다

 

김소월의 <거친 풀 흐트러진 모래톱으로>에서 보여주듯이 풀꽃 같던 어릴 적 놀던 동무들 생각하며 그리움을 노래하였다.

 

거친 풀 흐트러진 모래동으로

말없이 걸어가며 놀래는 청령(蜻蛉),//

들꽃 풀 보드러운 향기 맡으면

어릴 적 놀던 동무 새 그리운 맘//

길 다란 쑥대 꽃을 삼각(三角)에 메워

거미줄 감아들고 청령(蜻蛉)을 쫓던,//

늘 함께 이 동 위에 이 풀숲에서

놀던 그 동무들은 어디로 갔노!//

어릴 적 내 놀이터 이 동 마루는

지금 내 흩어진 벗 생각의 나라,//

먼 바다 바라보며 우득히 서서

나 지금 청령 따라 왜 가지 않노-asistch@hanmail.net


  • 글쓴날 : [2021-05-05 23:1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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