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쑥부쟁이와 구절초

꽃의 패설 2

-쑥부쟁이와 구절초

 

시인 장종국

 

임진나루에서 장산 오르는 가을 길섶엔 구절초와 쑥부쟁이가 길마중 한다. 구절초와 쑥부쟁이가 닮아있어 선뜻 구별이 쉽지 않다. 안도현의 시 구절에 쑥부쟁이와 구절초를 구별하지 못하는// 나 하고 이 들길을 여태 걸어왔더니// 나여, 나는 지금부터 너하고 절교다.” 나한테 건네는 말 같이 들린다.

구절초(九折草, 九節草)와 쑥부쟁이는 같은 국화과 여러해살이풀이다. 구절초는 음력9월에 핀다하여 구절초라 부르기도 하고, 5월 단오에는 줄기가 5마디가 되고, 99일 중양절에는 9마디로 꽃을 피운다하여 구절초라 부르게 되었다 한다. 구절초의 꽃은 흰색으로 피고 쑥부쟁이 꽃은 분홍색을 띠고 서양에서는 구절초를 마아가렛이라 부른다.

 

조선조 문인 이규보의 국화사랑이 남다르다.

 

서리를 견디니 더욱 봄꽃보다 뛰어나/삼추를 지나고도 가지에서 떠날 줄 모르네

꽃 중에 오직 너만이 굳은 절개 지키니/함부로 꺾어서 술자리에 보내지 마오

 

박용래 시인의 고향 가는 길목에 피어있는 <구절초>는 눈물비친 사랑이라며 누이를 떠올리며 쓴 시가 있다.

 

누이야 가을이 오는 길목 구절초 매디매디 나부끼는 사랑아

내 고장 부소산 기슭에 지천으로 피는 사랑아

뿌리를 내려서 약으로 먹던 기억

여학생이 부르면 마아가렛/여름모자 차양에 숨었는 꽃

단추 구멍에 달아도 머리핀 대신 꽂아도 좋을 사랑아

누이야 가을이 오는 길목 매디매디 눈물비친 사랑아

 

유안진 시인의 <구절초>는 늦가을 이른 아침 고즈넉한 산사를 찾아 오르며 우연히 만나는 비구니의 모습을 연상하였다.

 

들꽃처럼 나는/욕심 없이 살지만

그리움이 많아서/한이 깊은 여자

서리 걷힌 아침나절/풀밭에 서면

가사장삼 입은/비구니의 행렬

그 틈에 끼어든/나는/구절초

다사로운 오늘 볕은/성자의 미소

 

파울 첼란은 유대인 가정에서 외아들로 태어나서 독문학을 전공하였고 헤브리어를 공부했다. 양친은 2차 대전 시 유대인강제수용소에서 사망하였다.

<죽음의 푸가>는 시선집의 표제작이기도 하고 파울 첼란의 대표작이기도 하다. 마르가라테(마아가렛. 구절초)는 애인의 금빛머리카락을 노란꽃송이에 비유하여 수용소상황에서 절망하고 애절한 그리움을 위로하며 노래하였다.

 

새벽의 검은 우유 우리는 마신다 저녁에

우리는 마신다 점심에 또 아침에 우리는 마신다 밤에

우리는 마신다 또 마신다

우리는 공중에 무덤을 판다 거기서는 비좁지 않게 눕는다

한 남자가 집안에 살고 잇다 그는 뱀을 가지고 논다 그는 쓴다

그는 쓴다 어두워지면 독일로 너의 금빛 머리카락 마르가라테

그는 그걸 쓰고는 집 밖으로 나오고 별들이 번득인다

그가 휘파람으로 자기 사냥개들을 불러낸다

그가 휘파람으로 자기 유태인들을 불러낸다 땅에 무덤 하나를 파게 한다

그가 우리들에게 이제 무도곡을 연주한다//

새벽의 검은 우유 우리는 너를 마신다 밤에/우리는 너를 마신다 또 마신다

한 남자기 집안에 살고 있다 그는 뱀을 가지고 논다 그는 쓴다

그는 쓴다 어두워지면 독일로 너의 금빛 머리카락 마르가레테

너의 재가 된 머리카락 줄리미트 우리는 공중에 무덤을 판다

공중에선 비좁지 않게 눕는다//

그가 외친다 더욱 깊이 땅 나라로 파 들어가라 너희들 다른 사람들을 노래하고 연주하라

그가 허리춤의 권총을 잡는다 그가 총ㅇ르휘두른다 그의 눈은 파랗다

더 깊이 삽을 박아라 너희들 너희 다른 사람들은 계속 무도극을 연주하라//

새벽의 검은 우유 우리는 너를 마신다 저녁에

우리는 마신다 또 마신다

한 남자가 집 안에 살고 있다 너의 금빛 머리카락 마르가라테

너의 재가 된 머리카락 줄라미트 그는 뱀을 가지고 논다//

그는 외친다 달콤하게 죽음을 연주하라 죽음은 독일에서 온 명인

그가 외친다 더 어둡게 바이올린을 켜라 그러면 너희는 연기가 되어 공중으로 오른다

그러면 너희는 구름 속에 무덤을 가진다 거기서는 비좁지 않게 눕는다//

새벽의 검은 우유 너를 마신다 너를 점심에 죽음은 독일에서 온 명인

우리는 마신다 너를 저녁에 또 아침에 우리는 마신다 또 마신다

죽음은 독일에서 온 명인 그의 눈은 파랗다

그는 너를 맞힌다 납 총알로 그는 너를 맞힌다 정확하게

한 남자가 집안에 살고 있다 너의 금빛 머리카락 마르가라테

그는 우리를 향해 자신의 사냥개들을 몰아 댄다

그는 우리에게 공중의 무덤 하나를 선사한다

그는 뱀을 기지고 논다 또 꿈꾼다 죽음은 독일에서 온 명인//

나의 금빛 머리카락 마르가레테

너의 재가 된 머리카락 줄라미트

 

우리는 꽃으로부터 위안을 받되, 꽃에게 위안을 주지 못한다. -asistch@hanmail.net

 


  • 글쓴날 : [2021-05-05 23:1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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